Lifestyle

바 초년생을 위한 12가지 지침

2017.04.28손기은

요즘 뜨겁다는 바 Bar에 들어가 마침내 의자에 앉았다. 그런데 메뉴판은 어떻게 봐야 할지, 어떤 걸 묻고 어떻게
답해야 할지, 뭘 마셔야 할지, 모르면 모른다고 해도 될지…. 나만 빼고 모두 능숙한 것처럼 보여 어쩐지 좀 주눅들었던 경험이 있다면 아래 열두 가지만이라도 염두에 두자. 숨통이 트이면 술맛도 터진다.

01 메뉴판 앞에서 서두르지 않는다 바의 메뉴판은 암호처럼 막막하고, 등잔 밑처럼 침침하다. 하지만 일단 메뉴판을 펼쳤으면 서두르지 않는다. 다그치는 건 내 마음뿐. 대부분의 칵테일 메뉴판은 크게 두 개의 카테고리로 나뉘어 있다. 클래식과 시그니처. 클래식은 짧게는 30년 전부터(마가리타, 피스코사워), 길게는 200년 전부터(마티니, 올드패션드) 세계 전역에 통용된 칵테일을 일컫는다. 시그니처는 그 바의 바텐더가 자신만의 스타일로 창작한 레시피를 선보이는 칵테일이다. 클래식을 기본으로, 몇 가지 재료를 바꾸거나 더해 ‘트위스트’를 줄 수도 있고, 아예 실험적인 칵테일을 만들 수도 있다. 보통 시그니처 칵테일이 5천원 정도 더 비싸고 색이나 모양이 더 화려한 경우가 많다. 어떤 바에 처음 찾았다면 클래식 칵테일을 먼저 마셔보고, 이 바텐더가 자신과 주파수가 잘 맞는다 싶으면 시그니처 칵테일로 넘어가본다.

“클래식 칵테일 중에서도 역사가 오래된 것일수록 위스키, 럼, 진을 베이스로 쓰는 칵테일이 많아요. 알코올도 강하고 맛도 달지 않죠. 190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과일 주스를 칵테일에 쓰기 시작했기 때문에 좀 더 신선하고 가벼운 칵테일이 많아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기초적인 역사만으로는 칵테일의 가늠이 부족하다면, 메뉴판 사진 속 잔 모양으로 칵테일의 스타일을 예상해볼 수도 있어요. 잔이 손 안에 쏙 들어오는 ‘쇼트 드링크’용이라면 전반적으로 맛이 드라이하면서 묵직하고, 물잔처럼 긴 ‘롱 드링크’용이라면 좀 더 가벼울 겁니다. 스터(얼음 넣고 젓기만 하는)로 만드는지, 셰이킹을 하는지 바텐더에게 물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스터 방식은 주로 알코올이 강한 편이고 셰이킹을 하는 건 좀 더 가벼운 쪽일 확률이 높으니까요. 밥 루이종(‘밥스 스피크이지 by 번’ 바텐더)

 

02 가격 묻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바텐더는 메뉴판에 없더라도 손님에 맞춰 칵테일을 만들고 위스키를 판매한다. 이 경우 묻지 않으면 가격을 도통 알 수 없다. 그러니 거침없이 묻는다. 바텐더에게 오늘 밤 나의 소비 계획을 이야기해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10만원으로 세 잔의 위스키를 마실 계획이다” 이러면 바텐더와 소통을 훨씬 더 깔끔하게 할 수 있다. 잘 보이고 싶은 사람과 함께 바를 찾은 경우에도 똑같다. 당당하게 가격을 묻는 것이 어설프게 아는척하는 것보다 훨씬 점수를 더 딸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참고로 서울 시내 바의 경우 칵테일 한 잔이 1만5천~3만원으로 다양하고, 숙성 기간 12년 정도의 싱글 몰트위스키가 30밀리리터 한 잔에 2만원 내외다.

 

03 바텐더에게 자신의 주량을 먼저 알려준다 바텐더는 ‘걸어 다니는 메뉴판’이다. 진짜 메뉴판에서 답을 못 찾았다면 바텐더에게 칵테일 추천을 받는다. 이때 자신의 취향을 정확하게 이야기해줘야 원하는 칵테일을 맛볼 수 있다. 콜라나 생수도 자신이 원하는 브랜드와 맛이 정확한데, 2만원짜리 음료 한 잔이야말로 자기 입맛에 딱 맞는 것으로 마셔야 후회가 없다. 바텐더에게 알려줄 자신의 취향 중 가장 중요한 첫 번째는 주량이다. 칵테일은 5도에서 40도 이상까지 다채로워 주량을 감안하고 추천을 시작해야 모두가 즐거운 밤이 될 수 있다.

 

04 자신의 음료 취향을 편하고 솔직하게 설명한다 평소 자신이 좋아하는 음료 취향을 바텐더에게 이야기해준다. 바텐더는 두세 가지의 질문으로 손님에게 딱 맞는 칵테일을 추리려고 한다. 스무고개도 아니고 점집도 아니니, 최대한 자신의 정보를 와르르 쏟아놓아본다. 달콤한 맛이 좋은지, 신맛이 좋은지, 과일 맛이 좋은지, 견과류 맛이 좋은지, 탄산을 좋아하는지…

“자신의 취향을 이야기할 때는 일상적인 용어로, 평소 자신이 먹어본 음식들을 예로 들어서 이야기하면 됩니다. ‘매운 새우깡’을 좋아한다거나 ‘요맘때’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었다거나, ‘브라더 소다’ 술이 좋았다거나, 평소 코코넛 워터를 즐겨 마신다거나 하는 식으로 편하게 설명합니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커뮤니케이션 오류를 많이 줄일 수 있어요. “신맛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손님이라도 단맛에 신맛이 살짝 도는 것을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 서로의 기준이 다르니 생기는 현상이다. 김재형(글래드 호텔 여의도 ‘마크티’ 바텐더)

 

05 취향을 복합적으로 이야기한다 취향을 이야기하는 게 좀 자연스러워졌다면, 서서히 취향의 조합을 바텐더에게 전달해본다. “초콜릿을 좋아하지만 크림이 섞인 건 싫어요.”, “딸기를 좋아하는데 신맛은 싫어요.”, “신맛은 좋은데 알코올 도수가 높은 건 싫어요.” 같은 단맛이라도 어떤 다른 맛이 섞이는 게 좋은지에 따라 추천 칵테일이 달라진다. 자신의 취향이 조금 좁혀지기 시작했다면 그때부턴 맛보는 칵테일의 이름을 잘 기억해둔다.

단맛 + 부드러운 맛 알렉산더 브랜디를 베이스로 쓰고, 카카오 리큐르를 더한 칵테일이다. 디저트 같은 단맛이 나 마지막 잔으로 주문하는 경우가 많다.

 

단맛 + 씁쓸한 맛 네그로니 진, 캄파리, 스위트 베르무트를 더한 대표적인 클래식 칵테일. 캄파리의 씁쓸한 맛이 단맛의 옆구리를 살짝 찌른다.

 

단맛 + 상큼한 맛 보스턴쿨러 럼, 진저에일, 레몬 주스, 설탕이 들어간 클래식 칵테일. 집에서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고, 맛도 새콤달콤하다.

 

06 자신의 컨디션과 식사 여부를 알려준다 컨디션이 별로면 알코올 도수가 낮은 칵테일을, 저녁 식사 전에 마시는 한잔이라고 설명하면 허브 리큐르나 마티니, 네그로니처럼 소화를 촉진시키는 칵테일을 추천해준다. 식사 이후라면 생강, 라임, 레몬처럼 입 안을 씻어주는 칵테일, 고기를 먹고 왔다면 맨하탄이나 불바디에처럼 입 속 풍미와 연결되는 칵테일을 추천할지도 모르겠다.

 

07 좋아하는 베이스 술을 중심으로 칵테일을 확장한다 칵테일과 가까워진 뒤엔 자신이 좋아하는 칵테일의 베이스 술이 어떤 것인지 고민해본다. 진이 좋은지 보드카가 좋은지 럼이 좋은지, 그 카테고리를 중심으로 칵테일의 기반을 넓혀본다. 여의도 글래드 호텔 1층에 있는 바 마크티는 시그니처 칵테일은 모두 위스키를 베이스로 만드는데, 위스키 칵테일이 잘 맞는다면 방문해볼 만하다.

마크티타임 이 바에서 가장 사랑받는 시그니처 칵테일. ‘위스키 사워’ 칵테일을 기반으로 약간의 재미를 더한 술이다. 홍차를 넣고 우린 술을 쓰고, 찻잔에 낸다.

 

미시시피뮬 모스코뮬 스타일의 칵테일로 보드카 대신 위스키를 쓴다. 헤이즐넛 리큐르를 더해 향도 추가한다. 모스코뮬의 단짝인 구리 잔 대신 파인애플 모양 잔에 낸다.

 

톰소여 톰소여의 머리카락처럼 장난기 넘치는 색깔이지만 일단 마시면 아일라 위스키의 스모키한 맛(소독약처럼 쏘는 훈연 향)의 강 펀치를 느낄 수 있는 칵테일이다.

 

08 기준점이 될 수 있는 몇 가지 클래식 칵테일을 알아둔다 바텐더의 칵테일 스타일을 알고 싶다면 시그니처보단 클래식 칵테일을 주문해서 마셔본다. 시그니처 칵테일은 다른 바에서 만들지 않는, 그 바에서 개발한 술이라 오히려 바텐더들의 조주 특징을 비교하기 어렵다. 제한된 두세 가지 술로 만들지만 미세한 차이에 따라 맛이 확 달라지는 클래식 칵테일이 비교 기준점으로 삼기엔 더 좋다. 새로운 바에 갈 때마다 마음 속에 정해둔 클래식 칵테일을 주문하고, 그 바텐더의 실력 혹은 개성을 가늠해본다. 바텐더와의 소통이 힘든 해외 바 투어를 가면 이 과정은 필수다.

“클래식 칵테일 중 뭘 골라야 할지 망설여진다면 다섯 가지 정도를 시도해보세요. 맛과 향이 각기 다른 칵테일이자 한 번쯤 들어봤을 대표적인 칵테일입니다. 김렛, 화이트 레이디, 마티니, 진토닉, 사이드카. 김렛은 알코올 도수가 높고 새콤해요. 화이트 레이디는 새콤한데 알코올 도수는 좀 낮고 달콤한 맛이 더해져 있죠. 마티니는 강렬하고 깔끔한 알코올의 맛, 진토닉은 탄산과 어우러진 진의 맛이 매력입니다. 사이드카는 브랜디와 코앵트로의 조합을 느낄 수 있는 칵테일입니다.” 오연정(‘키퍼스’ 바텐더)

 

09 서로 다른 위스키 향을 세심하게 비교해본다 스모키하다? 셰리 오크통에서 오는 스파이시한 맛? 글로는 제대로 이해 못 하는 대표적인 위스키의 맛과 향이다. 특히 셰리 오크통에 숙성해 ‘스파이시’하다는 건 다음 세 가지가 섞인 걸 말하니 마시면서 확인해본다. 생과일이라기보단 곶감처럼 무겁고 달콤한 단맛, 다크 초콜릿처럼 씁쓸한 맛, 민트나 허브를 씹었을 때처럼 ‘화’한 맛.

싱글 몰트위스키 입문을 위한 다섯병



발베니 12년 더블우드 밸런스가 좋기로 유명한 위스키다. 바나나, 파인애플 같은 달콤한 과일 향이 떠오르는 스페이사이드 지역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오큰토션 12년 증류를 세 번 해 전반적으로 깔끔한 맛이 나고, 풍미가 달면서 화사한 편이다. 빵 냄새, 레몬향이 특징힌 로우랜드 위스키의 특징을 느낄 수 있다.

맥캘란 12년 더블캐스크 셰리 오크통 숙성의 대명사 격인 증류소인데, 12년 더블캐스크는 특히 셰리 입문자들이 마시기 좋다. 이 술이 잘 맞는다면 셰리 오크통의 풍미를 더 파본다.

하이랜드파크 다크오리진 숙성연수를 기록하지 않는, 요즘 유행하는 ‘논에이징’ 제품. 특히 다크오리진은 유러피안 셰리 오크통에 숙성해 스파이시한 느낌이 강렬하다.

블랙 스네이 어느 증류소에서 샀는지 원액의 출처를 밝히지 않고 판매하는 독립병입자의 특별판 위스키. 그 원액을 ‘솔레라’ 방식으로 숙성시킨 후 출고한다.

 

10 잔은 여유 있게 비우고, 두 잔 이상 시킨다 위스키는 숙성연수 1년당 최소 1분을 투자하라는 말이 있다. 바에서 위스키 한 잔을 마실 땐 쭉쭉 들이키지 말고, 한 모금씩 최소 15분 정도 혹은 그 이상의 여유를 두고 마신다. 칵테일도 마찬가지다. 보통 한 바에서 두세 잔의 술을 마시는데, 커버차지(자리에 부과하는 1만원~1만5천원 정도의 비용) 때문이기도 하지만, 바텐더가 처음 만난 손님과 영점을 맞추는 데 최소 두 잔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11 바텐더를 적으로 만들지 않는다 간혹 바텐더를 술 경험으로 이기려거나 술 지식으로 언쟁을 벌이는 경우가 있다. 바텐더는 소믈리에나 셰프처럼 한 분야의 전문가다. 잘못된 술 지식을 계속 읊는 손님에게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 어설픈 자존심이나 얄팍한 잡기로 바텐더와 씨름하려는 건 도대체 왜…. 바텐더는 적이 아니라 친구로 만들어야 할 대상이다.

 

12 칵테일 트렌드를 따라가 본다 최신 트렌드가 무엇인지는 알아둔다. 유행의 파도에 오르면 더 신나게 바 문화를 즐길 수 있다. 요즘은 해외 트렌드가 시차도 없이 국내에 빠르게 들어오고, 해외 바텐더들이 국내에서 게스트 바텐딩을 하는 이벤트도 많이 열린다. 새로 수입되는 술, 흔하지 않은 술을 즐기다보면 바 초년생에서 바의 ‘덕후’로 빠르게 이동할 수도 있다.

 

해외에서 뜨는 술로 만든 칵테일

피스코로 만든 피스코 사워 바텐더 밥 루이종의 시그니처 칵테일 중 요즘 뜨는 베이스로 만든 술 세 가지를 골랐다. 피스코는 포도로 만든 페루의 전통 증류주다. 이 술로 만든 피스코 사워 칵테일은 페루는 물론이고 중남미 지역의 ‘국민 칵테일’로 통한다. 국내에는 아직세 종류의 피스코만 수입되고 있다. 피스코 사워는 클래식 칵테일이지만 국내에선 이제 시작하는 단계이다.

 

데킬라로 만든 멕시칸 보타니스트 데킬라의 기억이 혹시 숙취로 흐려져 있나? 요즘 다시 데킬라와 메즈칼 시장이 커지고 있다. 이 칵테일엔 데킬라와 매콤한 리큐르를 더해 향을 풍성하게 살렸다.

두 가지 럼으로 만든 엘 코만단테 전 세계 프리미엄 럼주가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열대 휴양지풍 잔에 서브하고 달콤하고 크리미한 맛의 사진 속 술 같은 티키 칵테일도 더불어 뜨겁다.

    에디터
    손기은
    포토그래퍼
    이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