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혼자이길 바라는 내 세대에게.
나는 1987년에 태어났다. 아주 좋을 때 태어났다고 생각한다. 화끈하게 23세기 정도에 태어나거나, 30세기 정도에 태어나지 않을 바에는 20세기 말에 태어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30~40대 친구들은 다들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우리는 20세기 말에 X세대로 불렸고, 21세기 초에는 N세대로 불렸다. 그래서 나는 우리들을 NX세대라고 부르려고 한다. 80년대생을 부르는 다른 명칭이 있다면 그렇게 부르면 좋겠는데, 찾아봐도 나오지 않아서 그냥 NX세대라고 부른다. 우리는 인터넷이 없을 때 태어났으며, 온라인 네트워크 발전의 산증인으로 살아왔고, 살고 있다. 다 늙어서 인터넷을 처음 접하지도 않았고, 태어나니까 인터넷이 깔려 있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에게 일어난 가장 큰 사건은 텍스트 머드 게임, 바람의 나라, 메일 주소 만들기, 나모 웹 에디터로 홈페이지 만들기, 블로그, 싸이월드였다. 인터넷이 없을 때, 우리는 혼자였다. 친구들하고 자전거 타고 오락실도 가고 노래방도 갔지만 집에 오면 혼자였다. 내가 태어난 경기도 과천시엔 어딜 가나 주공 아파트였고, 대부분의 주공 아파트는 고층 아파트가 아니었으며 이상하게 조용했다. 벤치가 많았는데 거기에 앉아도 혼자였다. 우리는 물리적으로 혼자였다. 인터넷이 생긴 다음부터 우리는 물리적으로 혼자일 수 없었다. 우리는 인터넷에 연결되었고, 잠들지 않는 관계성 속에서 살게 되었고, 메신저를 설치하고, 밤새도록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흥분을 하고, 그런데도 가끔 참을 수 없이 외로웠다. 인터넷이 없었을 때 느꼈던 외로움은 소외감이 아니었다. NX세대가 아직 X세대일 때, 우리는 우리가 혼자라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집에 있으면 혼자니까. 그게 당연하니까. 그리고 우리는 더 이상 혼자일 수 없게 됐다.
내가 NX세대를 좋아하는 이유는, 우리가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살아갈 수 있는 마지막 세대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세대라는 명명이 무리라는 건 안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더 생길지 모르니까. 원전 터져서 세상 멸망하고 미국에서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할 수도 있으니까. 모든 것이 폐허가 된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에서, 몇천 년이 더 흘렀는데도 아직도 쓰러지지 않은 피사의 사탑 앞에 선 주인공의 감정. 그것이 NX세대가 일상적으로 느끼는 감정이다. 우리에게 과거는 상품(굿즈, 레트로, 응답하라 시리즈)으로서만 소비되지 않는다. 그것들은 아직도 우리에게 물리적인 현실이며, 기억이다. 우리는 혼자일 수밖에 없었던 주공 아파트 앞 벤치를 기억할 것이다. 그래야만 할 것이다. 세월호를 잊을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아무것도 잊지 않아야 한다. NX세대는 책임이 막중한 세대다. NX세대는 다른 세대보다, 더 많이, 더 고통스럽게 모든 것을 애도해야 한다. NX세대가 인디 밴드를 구경하러 쌈지 록 페스티벌에 가거나 라이브 클럽에 다닐 때, 그들은 자신의 취향을 자신이 결정한다는 착각 속에 있었다. 그러나 NX세대는 더 이상 착각할 수 없게 됐다. 우리는 그냥 힙스터다. 우리가 뭔가를 구입하고 즐기는 이유는 그것이 그저 새롭고 힙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절대로 착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절대로 혼자가 아니다. 그것이 축복일 때도 있을 것이다. 취향의 공동체이며, 연대의 가능성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이 만나서 서로의 스마트폰만 쳐다보고 있다고, 그래서 외롭다고 하는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당신의 진짜 문제는 외롭지 않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잡고 있지 않을 때도, 당신은 필 연적으로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다. 이것이 내가 공동체라는 멋지고 좋은 말을 싫어하는 이유다. 인터넷은 내게 희생을 강요한다. 내가 절대로 좋아할 수 없는 사람들. 그러니까 박근혜와 전두환 같은 사람들과 나는 연결되어 있다. 혹자는 사회라는 게 원래 그런 거라 할 것이다. 하지만 잠시라도 잊을 수 있기를, 불가능하다면 잠시라도 나 혼자서 그들을 미워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내 심장 속에는 이미 인터넷이 살고있다. 아무도 외롭지 않다면 혁명은 불가능하다. 물리적인 외로움에서 출발하지 않는 연대는 좌초되기 마련이다.
NX세대에게 일어난 가장 큰 사건 중 하나를 나는 코엑스몰 리뉴얼이라고 본다. 과거에 코엑스몰을 그렇게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곳은 넓고,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어쩐지 황량했다. 얼마나 쓸데없는 공간이 많았던지, 온종일 숨바꼭질을 할 수도 있었다. 당시의 코엑스몰은 NX세대에게 근대 파리의 아케이드 같았다. 그곳에는 옛날 것과 현재의 것과 미래의것이 함께 자리했으며, 우리는 술래잡기를 하면서 그 커다란 지하상가를 휙휙 가로질렀다. 그러나 리뉴얼된 코엑스몰은…. 천장도 하얗고, 벽도 하얗고, 바닥도 하얗다. 거긴 그냥 정신병동 같다. 코엑스몰에선 반디앤루니스에도 들어가고 싶지 않다. 아무도 숨바꼭질을 하지 않는다. 어서 빨리 우동집에 들어가야 한다. 우동을 먹고 빨리 여기를 탈출해야 한다. 과거의 코엑스몰이 어땠는지도 생각나지 않는다. 이제 더 이상 여기는 넓지 않고, 많은 사람과 크리스마스의 명동처럼 어깨를 자꾸 부딪혀야 한다. 슬프지도, 외롭지도, 짜증나지도 않는다. 숨을 쉬기 위해 어서 빨리 여기를 탈출하고 싶을 뿐이다. 나는 코엑스몰과 SNS가 비슷해 보인다. 여기엔 내가 앉아 혼자가 될 곳이 없다.
NX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가 어떻게 발버둥치며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한다. 클라우드 서비스를 잘 활용할 수 있었으면 한다. 재택근무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이 재택근무로 바뀌었으면 한다. 노동 시간을 줄이자는 것이 아니다. 맺지 않아도 될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이야말로 악의 수렁이다. 사람에 대한 희망을 잃게 만드는 것이 바로 매일 출근해야 하는 직장이다. 출근하지 않는다면 낮에 공원에 가고 피시방에도 갈 것이고, 천천히 오가며 세상이 생각보다 잘 생겼다고 감동도 하고 막 집에서 시도 써보고 환경도 보호할 것이다. 재택근무 비율이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진보 진영 정당도 득세할 것이다. 사회가 학교를 만들어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했던 것은, 싫은 사람하고도 만나야 한다는 것, 노동자가 되면 그렇게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으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싫어하는 정당이나 사람에게도 투표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결론은 이것이다. NX세대여 자기 자신에게 더 유동적인 시공간을 부여하라, 인간관계를 협소하게 만들라, 더 사랑하라, 노숙자에게 돈도 주고, 교회 아줌마 전단지도 받아주고, 살았던 동네에도 가보기를, <히어로즈 오브 스톰>도 많이 하고, 행복하자. 아버지 말고.
“세대론은 다만 함정일까? 그것에 대해 말하느니 결국 스스로 덫을 놓는 격일까? 의심하며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고 답한다. 나와 내 세대는 무엇인가? 서로 다른 해에 태어난 12인의 칼럼과 서울에 사는 젊은 사진가 7명이 ‘세대’라는 테마로 자유로이 작업한 사진을 나란히 싣는다.”
- 에디터
- 글 / 김승일(1987년생, 시인)
- 포토그래퍼
- 김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