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냉소와 혐오의 십대

2017.06.15GQ

“세상 좋아진 줄 알라”고들 한다. 하지만 우리는 ‘팔자 좋지’ 않다. 한 번도 주체가 된 적이 없는 이들의 취약한 자아를 냉소와 혐오의 정서가 보충해주고 있다.

장민 , 2017

장민 <한바퀴>, 2017

고등학교 생활은 내게 새로운 경험이었다. 한번도 그렇게 내 인격이 무시당하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욕을 입에 달고 다니는 선생으로부터 악담을 듣는 건 물론이고 때때로 물리적 폭력도 감수해야 했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한나절이 온전히 내 시간이 아니게 되었고, 내 몸도 내 몸이 아니게 되었다. 내 몸과 내 시간이 누군가의 시선에 의해 통제되는, 자존심 구기는 경험이다. 그 학교에서 종종 이런 얘기를 듣는다. 자기 학창 시절 학교는 이렇지 않았다고, 요즘은 ‘학생 인권’ 운운 때문에 교권이 침해당하고, 아이들을 강하게 키우지 못하니 의지력이 없어졌다고. 남자애들이 ‘계집애’ 같아졌다고. 우리 보고 “니들은 세상 좋아진 줄 알라”고 그러더라. 우리가 운 좋게 태어나 “팔자 좋게” 산다는 얘기였다.

궁금했다. 내 삶을 살아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내가 겪고 있는 구체적인 문제들을 직접 겪어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지금 내 상태를 헤아리고 팔자 좋게 좋은 세상을 누리고 있는지 말할 수 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세상 좋아졌다”는 그들의 말은 어떤 측면에서는 맞는지도 모른다. 피멍이 나도록 학생을 때려도 ‘교육’이라는 명분으로 이해될 수 있었던 그네들의 세상과, 신고를 당하지 않도록 신체에 때린 흔적이 남지 않게 등짝을 후려쳐야 하는 우리의 세상 사이에는, 짧게는 십 년, 길게는 몇 십 년의 간극이 있으니까. 때로 신체의 부상마저도 감수해야 했던 예전에 비해, 여전히 그들의 폭력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할지언정 “선생한테 걸리면 벌 좀 서고 말지 뭐” 하며 숙제를 안 하고 자습 시간에 엎드려 자는 ‘용기’를 발휘할 정도의 여유는 있는, 좀 더 숨통이 트인 세상에서 우린 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들에게는 정치적 권리가 없다. 우리 보고 “팔자 좋다”는 사람들은 이해 못할지도 모르겠지만, 이건 그네들의 학창 시절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사실이다. 단순히 투표를 하지 못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내 이익을 위하여, 이해관계의 당사자로서 제 삶을 결정할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는 의미다. ‘박근혜’나 ‘최순실’ 따위의, 지금 당장의 우리 삶과는 동떨어진 원거리의 정치에 대해서는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도, 당장 학교에서 일어나는 강제 야자와 체벌에 대해서 말하는 건 환영받지 못했다. 당장의 내 삶의 양상을 결정할 근거리의 정치에서 우리의 권리 행사는 여전히 유예되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내 삶을 결정할 주체로서의 지위는 인정받지 못한 채 비교적 숨통만 트인 우리에게 남은 건 무기력이었다. 숨통마저 막히던 당신들은 맞는 게 무서워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하는 ‘복종적 주체’라도 될 수 있었지만, 숨통 정도는 트이도록 느슨해진 오늘날의 우리는, 그렇게까지 공부를 할 이유도 없어졌고, 그렇다고 해서 진정 자유롭게 스스로의 삶을 결정하는 정치적 주체가 될 수도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양극단 사이 어딘가에 애매하게, 무기력한 채로 서 있다. 저들을 향해 우리의 권리를 부르짖지도 않고, 그렇다고 열심히 공부를 하지도 않는다. 이런 우리의 모습이 그들의 눈엔 의지력이 없어 보일 법도 하다. 그렇게 한 번도 주체로서의 경험을 가져본 적이 없는 우리의 자아는 취약하다.

취약한 자아는 제 결손을 보충하기 위해 외부의 권위에 기대고는 한다. 하지만 저 어른들을 보자. 제 어릴 적의 경험에만 매몰되어, 달라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이해하지 못한 채 닦달하기만 하는 이들에게, 우리가 온전히 기댈 수 있었을까? 물론 그 어른들이 누구보다 우리를 위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그들이 위하고 걱정하는 우리는, 지금 당장 그네들의 눈앞에 있는 근거리의 우리가 아니라, 원거리의 ‘우리 아이들’이었다. 우리의 정치적 행동이 근거리의 본인들을 향할 때는 환영받지 못하고 원거리의 타자를 향할 때만 환영받았듯이, 그들의 ‘우리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은 근거리가 아닌 원거리의 저편을 향하고 있었다. 저 먼 옛날 그네들이 ‘아이들’이었을 적의 기준으로 우리를 재단하며, 저 먼 훗날 대학을 다니고 취업을 할 ‘우리’를 위해 지금을 사는 우리가 무언가를 즐기는 건 주제넘은 사치로 간주했다. 그들이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현재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의 인격이 차지하는 자리는 없었다. ‘우리 아이들’은 언제나 그들의 머릿속에 하나의 이상적인 이미지로 박제되어 있을 뿐이었다.

이건 정치적 담론의 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학교의 교목 신부가 한 번은 우리에게 세월호 다큐멘터리를 보여주고는, 보도 윤리를 저버린 언론과 구조의 책임을 다하지 않은 정부에 대해서 성토했다. 그들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희생되었다고. 근데 그는 눈앞 우리들의 인격은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통제에 따르지 않는 ‘아이들’을 육체적인 고통으로 겁주는게 그의 방식이었으니. 그가 만약 “우리 아이들”의 선생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 교육 방식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진정 사랑할 수 있는 “우리 아이들”은 가까이서 그 인격을 마주할 일이 없는, 저 멀리의 ‘아이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명 한 명의 개성이 사상된 ‘우리 아이들’이 실은 인격체가 아님을, 누군가의 알량한 정의감과 감상을 위해 호출되는 대상화된 사물임을, 우리 중 몇몇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한편으로 ‘우리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지닌 이들이, 눈앞 우리들의 인격을 짓밟는 모순에 우리는 익숙해졌다. 모두가 ‘우리 아이들’을 위해 안전한 나라를 만든다고들 하지만 여전히 우리들의 목소리는 대변되지 못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대부분의 우리에게 더 중요한 건 지금 당장 내가 겪고 있는, 또는 겪어야 할 일들이지 언제 일어날지도 모르는 사고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우리에게 마이크는 쥐어 주지 않은 채, 모두가 저 멀리의 ‘아이들’에 대해서만 떠들고 있었다. 이렇게 지금 당장의 현실과 시공간적으로 유리된 담론들에 우리중 상당수가 공감하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그러니 ‘우리’ 중 누군가가 “세월호는 사고인데 그게 왜 정부 책임이냐”, “(세월호는) 정치적 선동”이라고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세월호를, 정치를, 우리와 떨어뜨려놓은 건 다름 아닌 그들이었다.

이렇게 학교에서건, 가정에서건, 정치의 장에서건, 그들은 진짜 우리의 인격을 존중해 준 적이 없다. 그러니 우리의 취약한 자아를 보충하기 위해 저들에게 기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자아를 충전하기 위해 권위를 획득하거나 혹은 외부의 권위에 의존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마지막 선택지는 냉소와 혐오였다. 언제든지 내 마음대로 깎아내릴 수 있는 타자를 머릿속에 그리며 허구적인 자신의 권력에 도취되는 것. 내가 세상과 타자들의 위에 서서 그들을 내려보는 듯한 허구적인 느낌으로 자위하는 것.

냉소와 혐오의 정서로 대표되는 ‘일베’ 유저의 주요한 연령층에 젊은 10대가 포함된다는 건 꽤나 징후적이다. 굳이 ‘일베’만을 따로 구분할 필요도 없이, 온라인상 혐오 정서의 주요한 담지자들이 이 10대를 포함한 젊은 층이라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한 번도 정치적 주체로서 대표된 적이 없는 이들의 취약한 자아를 냉소와 혐오의 정서가 보충해주고 있다. 마찬가지로 주체로서 대우받아본 적 없는 나와 내 10대 친구들이 공공연히 냉소와 혐오를 내비치는 걸 보며, ‘우리 안의 일베’가 연상된다면 그건 과연 나만의 기우일까.

세대론은 다만 함정일까? 그것에 대해 말하느니 결국 스스로 덫을 놓는 격일까? 의심하며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고 답한다. 나와 내 세대는 무엇인가? 서로 다른 해에 태어난 12인의 칼럼과 서울에 사는 젊은 사진가 7명이 ‘세대’라는 테마로 자유로이 작업한 사진을 나란히 싣는다.

    에디터
    글 / 이승엽 (1999년생, 고등학생)
    포토그래퍼
    장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