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나는 왜 박지훈을 지지했나

2017.06.23이예지

<프로듀스 101 시즌2>가 끝났다. 9명의 필자들이 각자 응원했던 소년에 대해 지지 이유를 밝혔다. 세 번째는 박지훈이다.

박지훈2

달리 말이 필요할까. 분분히 흩날리는 꽃가루 속에서 미소년이 해사하게 날린 윙크 한 방은 강력했다. 프로그램 초반 화력에 불을 지핀 그는 ‘윙크남’이라 불렸다. 그의 인기는 단숨에 치솟아 첫 1위를 장식했고, 1회부터 5회까지 맡겨놓은 듯 1등을 차지했다. 반면 2등 자리의 주인은 계속 바뀌었고, 초반 <프로듀스 101 시즌2>의 빈약한 서사는 박지훈을 넘느냐 마느냐의 구도에 집중하는 듯했다. 물론 박지훈이 1등을 선점한 건 윙크만의 공은 아니었고, 정통 아이돌 계보를 잇는 적자 같은 이미지의 그였기에 그 자리는 썩 맞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동시에 그 자리가 박지훈을 평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인상은 내내 지울 수 없었다. 나는 여기서 그가 1등이었기 때문에 당연시하고 넘긴 것들이 있지 않았는지 되짚고 싶다.

기본적인 정보부터 늘어놓자면, 박지훈은 잘생겼고, B반에 배정된 고른 실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성실했고, 무대 연기를 잘했다. ‘Oh Little Girl’ 무대처럼 생글생글 웃는 것만 잘할 줄 알았더니, ‘상남자’나 ‘Get Ugly’ 무대처럼 남자답고 도발적인 것도 퍽 어울렸다. 딱히 모난 데가 없어 튀는 언동도, 구설도 없었다. 노력파이기도 했다. 회심의 윙크 한 방 역시 우연히 잡힌 것이 아닌 스스로 부단히 꽃가루를 뿌리고 수십 번을 윙크해 잡힌 한 컷임이 밝혀졌고, 이후에도 ‘내 마음 속에 저장’ 같은 새로운 제스처를 개발해 히트시켰다. 심지어 그는 101명 중 눈에 띄기 위해 신발끈조차 형광끈으로 매는 노력하는 인재였다. 어린 아역시절부터 얼마나 노력하며 살았는지는 이미 고구마줄기처럼 줄줄이 발굴된 바다(그를 처음 봤던 기억이 빅뱅과의 눈물 대결인 건 잊고 싶다). 이 성실한 모범생의 외피는 단단히 제련되어 있어 그 안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알 수 있는 건 오직 귀여운 얼굴과는 달리 다부진 성격이겠거니 정도랄까. 형을 따르기보단 동생을 챙기는 방식으로 관계망을 형성하고, 끼를 부려놓고 앵글 밖에선 부끄러워한다거나,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다가도 카메라 불이 들어오면 만면에 미소를 꽃피우는 그는 영락없는 프로 아이돌이었다.

회를 거듭하며 박지훈에게 순위 발표식은 누군가에게 자리를 내어주기 위해 4분할 화면에 잡히는 방어전의 연속이 됐다. 그 탓이었는지, 성장기의 소년이 4개월간 부쩍 자란 것인지, 그에겐 알 수 없는 애수, 시대를 다소 늦게 타고난 비애가 묻어나는 미감이 서렸다. 곱게 내린 앞머리를 손으로 풀어헤쳐 올렸을 때 그 분위긴 더 짙어졌다. 그건 순정만화의 시절, 그러니까 만화가 ‘이미라’나 ‘이은혜’ 시대에 유효했던, 탐미적인, 선이 고운, 지금은 소녀취향 내지는 10대 취향이라고 무시당하기 일쑤인 그런 아름다움과 우수 어린 분위기였다. 좀 뻔뻔스럽게 말하자면 팬들이 말하는 ‘윙’국지색의 감성, 세기말을 지나 2000년대 초반을 휩쓸고 이제는 구시대의 유물이 된 유미주의의 집약체 같았달까. 양 볼에 띈 홍조, 파스텔로 경계선을 흐린 듯한 입술선은 르누아르의 인물 같았고, 곧게 뻗은 코와 턱선의 골격은 단단했다. 사연 있어 보이는 아련한 분위기는 이 얼굴을 완성했고, ‘망국의 왕자’처럼 보인다는 말들까지 오갈 정도였다.

마냥 해맑아 보이던 ‘윙크 소년’이 ‘망국의 왕자’가 되기까지, 1위를 지켜 내거나 내려갈 일만 남은 상황에서 마음속에 어떠한 부침이 있었는지, 아니면 자리의 중압감이 그런 분위기를 자아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의 고전적인 아름다움과는 별개로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수요는 계속해서 등장한다. 그리고 최종화, 박지훈은 마치 역전 당하리란 걸 알면서 페이스를 조절했던 것처럼 힘 빼지 않고 자연스럽게 왕좌를 넘겨줬다. 순위 매기기에 심취한 <프로듀스 101>의 시각에서 벗어나서도, 1등이 아니더라도 박지훈은 여전히 잘생겼다. 그리고 그 얼굴에 누가 되지 않을 만큼 성실하다. 가지각색 힙한 취향들 사이에서 순정만화 스타일의 미소년을 좋아한다고 ‘남자를 잘 모르는 십대 소녀 취향’이라고 무시당하고 있는가? 그러나 여러분, 한국에서 아름다운 남자는 희귀하고 고전은 영원하다. 정석 미인이자 클래식 아이돌인 박지훈은 지금도, 앞으로도 우리에게 꼭 필요한 존재다.

    에디터
    이예지
    사진
    그래픽
    김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