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스 101 시즌2>가 끝났다. 9명의 필자들이 각자 응원했던 소년에 대해 지지 이유를 밝혔다. 여덟 번째는 라이관린이다.
‘국민 프로듀서님 아직 한국어 못하지만 이야기 할 수 있어. 조금만 더 기대려. 우리 빨리 만날 수 있어. 나 너 사랑해. 미안해요. 한국어 잘 하지 않아. 내가 열심히 할 거야. 너 때문에.’
나는 청춘과 소년의 서사가 너무 많고, 지나치게 낭만화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위의 편지를 봤을 때 당황스러웠다. 그 클리셰를 가장 성공적으로 이용한 대만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의 대사도 저렇게 완벽하진 않았다. 타이페이에서 온 열일곱 살 연습생 라이관린이 쓴 파괴된 문장은 누군가에 의해 미화된 청춘이 아니라 지금 현재 청춘의 당사자가 쓸 자기 이야기의 담백한 인트로였다.
100여명이 출연하는 티비쇼에서 짧은 시간 안에 본인의 특징과 정보를 압축해서 전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라이관린은 그것을 본인만의 방식으로 성공시킨 출연자였다. 목련 같이 아련한 이미지와 차갑고 예민해 보이는 얼굴만으로도 대중의 눈에 띄기엔 충분했지만, 그의 진짜 매력은 미숙한 만큼 솔직하고 쉬워 왠지 시처럼 느껴지던 그의 언어에 있었다. 본인을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난데없이 “날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거 잘 듣길” 하던 모습은 ‘뭔가 웃긴데 멋있는’ 미묘한 감정을 느끼게 했고, 연습기간이 길지 않은 외국인에게 가혹했던 레벨 테스트에선 “마음이 힘들어요, 몸이 힘든 건 아닌데 마음이”라고 고백하며 이 쇼의 슬픔을 단번에 요약해내기도 했다. 이 밖에도, 몰래 카메라가 준비된 거울 앞에서 “이렇게 잘생겨진 사람 누구야. 너지?”라고 하다 갑자기 등장한 귀신을 보고 놀라 가슴을 쓸어 내리며 했던 “오늘 잘 수 없어요. 제가 열일곱 살이에요.” 도 라이관린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대사다.
본 평가무대가 시작되자 라이관린의 말은 랩으로 더욱 단단해졌다. 열일곱 어린 ‘상남자’의 마음을 ‘니가 날 필요로 한다면, 난 니 마음 속 마지막 좋은 남자가 될 거야’로 표현하며 상대팀의 도발에 근사한 오기를 드러내기도 했고, 이어진 2차 경연에서는 그룹의 센터에 자원하며 “나 불안감보다 자신감 더 있으니까”라는 만화 같은 말을 남기기도 했다. 지금 무엇이 가장 생각 나냐고 묻는 질문에 “무대!”라고 말하게 된 6개월차 연습생의 하이라이트는 포지션 평가 무대 ‘겁’이었다. ‘미래든 과거든 상관없이 난 내 삶이 결코 나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줄 거야.’ 아무런 기교 없이 나지막하게 울리던 진심을 바탕으로 ‘래퍼 되고 싶어 팝핀 배우고 싶어 / 맛있는 거 먹고 싶어 늦잠이 자고 싶어’라던 이 귀여운 가사는 어떤 힙합의 펀치라인보다 강했다. 센터 라이관린은 자신을 그 곡과 가사에 완벽히 어울리는 사람으로 연출해냈다. 그 무대는 연습생의 평가무대가 아닌, 라이관린이라는 한 스타의 데뷔 쇼케이스처럼 보였다.
전체 순위 2위를 기록한 뒤, 바로 다음 순위 발표식에서 20위로 떨어진 그가 “사실, 11등 안에 꼭 있는 것도 당연한 게 아니죠. 그래서 기분 괜찮아요.”라는 소감을 남겼을 때, 나는 내가 본 라이관린의 가능성에 더욱 확신을 가졌다. 최종 데뷔 멤버 11인 안에 그가 들지 못한다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무수한 부작용만 남은 이 문제적 쇼에서 소년은 홀로 성장을 증명했고, 흔들리지 않고 본인을 지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진짜를 알아본 많은 국민 프로듀서의 힘으로 그는 ‘워너원’의 최종 멤버가 되었다. 아마 앞으로도 한동안 늦잠을 자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잘 수 없어요. 열일곱 살은 아니지만…
- 에디터
- 글 / 복길(칼럼니스트)
- 사진
- <프로듀스 101 시즌2>
- 그래픽
- 김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