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이 아저씨 괜찮네?” 배우 권해효

2017.06.28이예지

권해효는 셔터를 눌러도 말을 멈추지 않는다. 하품도 참지 않는다. 그리고 책을 읽고, 사과상자를 두드린다. 이윽고 선한 이의 좋은 기운이 스튜디오를 채웠다.

피케 티셔츠는 S.T.DUPONT, 서스펜더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피케 티셔츠는 S.T.DUPONT, 서스펜더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책에 파묻힌 모습이 퍽 자연스럽다. 영화 <그 후>에서는 출판사 사장이자 평론가로 나오고, 책과 음식을 소개하는 교양 프로그램 <서가식당>에서 진행을 맡고 있는데, 책 좋아하나? 좋아해서 많이 본다. 취향은 편향돼 있지만. 문학서는 일 년에 두세 권 정도밖에 안 보고 주로 사회과학서나 이런저런 잡서들을 많이 본다. 이를테면 ‘술의 원리’ 같은. (웃음) 막걸리가 궁금해지면 막걸리에 대해 다룬 책을 다 사는 식이다. 좋아하는 게 생기면 깊이 파고드는 편이다. 사진 찍는 것도 좋아하고, 차도 좋아해서 오래 탔다.

랜드로버 D2와 로버 미니를 탄다고 들었다. 랜드로버 D2는 15년째, 로버 미니는 19년째 타고 있다. 영국 차를 좋아한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6위의 자동차 생산국인데도 불구하고 거리에 비슷비슷한 차만 있어서 아쉽다. 폼 나는 차는 있어도 아름다운 차를 만나는 건 참 드문 일이라.

한 차를 어떻게 그렇게 오래 탔나? 성격이 그렇다. 하나를 좋아하면 싫증을 잘 안 내고 오래 쓴다. 지금 봐도 멀쩡하다. 한번 보고 싶나? (그는 아이패드로 로버 미니 사진을 보여줬다.) 색은 타히티 블루, 예쁘지 않나? 멋진 슈퍼카는 아니지만, 이 차가 갖고 있는 불편함부터 역사까지 모든 게 다 아름답다. 석유 파동이 일어날 무렵 유럽엔 작은 엔진을 단 3륜차들, 일명 버블카 시대가 왔는데 이런 차들이 안전하지 않았다. 그때 엘리자베스 여왕이 주문해서 나온 차가 4륜 미니카다. 1959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같은 디자인으로 나오고 있다. 큰애가 태어난 1998년에 사서 애가 스무 살이 됐을 때 주면 멋지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글쎄, 내가 더 타고 싶다.

카메라는 뭘 쓰나? 롤라이35와 후지 X100. 인물을 주로 찍는다. 촬영현장, 공연장, 연습실, 술자리, 가리지 않는다. 이건 언젠가 공연 끝나고 찍은 뒤풀이 사진이다. 김규항 작가랑 임의진 목사, 이 분은 놀러왔던 아저씬데 자기도 한 곡 하겠다더니 블루스를 끝내주게 연주하더라. 알고 보니 ‘신중현과 엽전들’에서 베이스 치던 분이라고. 아, 이건 우리 색시.(그는 부인 조윤희를 색시라고 불렀다.) 젊을 적부터 사진을 찍었는데, 한 30년 전 사진을 인화해서 손에 쥐여주면 그렇게들 좋아하더라.

음악 연주도 하나? 아까는 촬영용 소품인 사과상자를 신명나게 두들기던데. 물론. 강산에와 친하고, 허클베리핀, 시와 등의 공연을 보러 다닌다. 아깐 사과상자가 꼭 카혼 같길래 반가워서 두들겼다. 카혼은 직육면체 나무상자 모양인 페루의 타악기인데, 노동자들이 짐을 나르다가 앉아서 두들기며 노래하면서 시름을 달랬다더라. 김규항 작가가 선물했다. 가끔 술 먹고 같이 두들긴다.(웃음) 지난달엔 피아노도 샀다. 한번 배워보려고.

<서가식당>에서 <상실의 시대> 이야기를 하다가 “음악과 술과 좋은 사람이 있으면, 그걸로 끝”이라고 한 말이 인상적이었는데, 그 말대로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만 있으면 충분하지. 술을 좋아하지만 술 자체보단 누구랑 마시냐가 더 중요하다. 곁들이는 음식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나는 중국요리엔 무조건 백주다. 여하튼 <서가식당>은 찍어놓고 쑥쓰러워서 못 봤다. 내가 나온 방송을 모니터링하지 않는 편이다.

영화는 어떤가? 영화는 봐야지. 특히 홍상수 감독 영화는 볼 수밖에 없다. 촬영장에서도 어떤 영화인지 모르고 촬영하니까. 홍 감독이 촬영 당일에 대본을 주는 건 유명하지 않나. 전체적으로 어떤 이야기인지 잘 모르기 일쑤다. 이번 <그 후>는 내가 주인공이라 전체 이야기를 파악하면서 찍은 첫 영화다.

<그 후>는 배우 생활 27년 차에 <진짜 사나이>(1996) 이후 첫 주연작이다. 감회가 남달랐겠다. 개인적으로 정말 큰 의미다. 그것도 색시와 함께 칸 영화제 경쟁 부문까지 갔지 않나. 칸에서 만난 설경구도 부러워하더라. 색시는 이명세 감독 <첫사랑>(1993) 이후 첫 영화인데, 나이 50에 이렇게 화려하게 컴백하는 배우가 있겠나.(웃음)

스트라이프 로브는 비바스튜디오, 리넨 티셔츠는 코스, 리넨 팬츠는 시리즈.

어쩌다 부인 역에 실제 부인인 조윤희가 캐스팅된 건가? 친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가장 가까운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지 않나. 홍상수 감독 입장에서는 권해효라는 사람 안에 조윤희라는 사람이 엄청나게 크게 자리하고 있으니 궁금했겠지. 그래서 처음 제안했을 땐 색시가 싫다고 했는데, 테스트 촬영 때 한번 구경 왔다가 바로 같이 하게 됐다. 즐거운 작업이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4편째 출연이다. <다른 나라에서>(2011),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2016), <밤의 해변에서 혼자>(2017), <그 후>에 이르기까지. 어떤 인연으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나? 그의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을 보고 대단히 충격을 받았고, 꼭 이 감독과 작업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연이 닿지 않았다. 그리고 <하하하>(2009) 때 홍감독이 문소리를 보러 <광부 화가> 공연에 왔는데, 그때 날 보고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더라. 그게 연이 됐지. 그는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내 영화에서 어떤 인물이 제일 마음에 들었냐” 같은. 그래서 나는 “한 명도 없다”고 답했지. 그의 인물들은 지질하기 짝이 없다. 나는 누가 그렇게 삽질하고 있으면 옆에서 욕하고 채찍질하는 사람에 가깝다.(웃음)

홍상수 감독의 인물에 대한 감상에 동감한다. 지금도 같은 생각인가? <당신과 당신 자신의 것>을 찍을 때만 해도 내가 온전히 그의 영화에 들어가 있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2015)에서 춘수(정재영)가 “만나서 반가웠다”고 하는 신에서 이상하리만큼 큰 감동을 받았다. 누군가를 진짜로 만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라. 다음에 홍 감독 영화에 출연한다면 정말 헌신할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홍상수 감독과 함께한 배우들이 하나같이 토로하는 고충이 있다. 배우가 사전에 뭔가를 계획할 여지나 시간을 안 주고 그의 리듬대로 찍게끔 하는 것. 하지만 그런 작업이 역설적으로 꾸며지지 않은 배우 그 자체의 개성을 드러내지 않나? 맞다. 배우로서 어떤 신을 대할 때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하는 일들이 있다. 그런데 홍상수 영화를 할 땐 그런 계획과 설정이 원천 봉쇄된다. 관성적인 연기가 차단된 순간, 배역이 아닌 자연인으로서의 배우 자체가 드러난다. 그의 영화는 언뜻 보면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사실은 굉장히 다르다. 어떤 배우가 그 역할을 맡느냐에 따라서 영화의 톤과 색깔이 달라지지 않나. 그리고 이젠 권해효라는 완전히 다른 내 색깔을 처음으로 입혀보는 거다.

김태우, 김상경, 이선균, 유준상, 정재영…. 모두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지질하면서 무력한 지식인 중년 남성을 대변하는데, 어떤 배우가 연기하느냐에 따라 조금씩 달랐다. 맞다. 태우나 상경이가 하면 말 그대로 지질한데(웃음), 준상이가 하면 좀 귀여운 구석이 있고, 선균이가 하면 약간 히스테릭하고 짜증스럽고(웃음), 재영이가 하면 이상하게 연민도 생기면서 마음이 좀 가고.

그렇다면 권해효가 연기하는 홍상수의 남자는 어떨까? 저 나이에 연애 한번 하려고 되게 애쓴다, 하는 애잔함? 관객들이 어떻게 봐줄지 궁금하다.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얘기하자면, 허세 있는 ‘먹물’ 같은 느낌이 좀 더 강하다. 맞다. 먹물의 허례허식이 깔려 있다. 봉완이 아름(김민희)과 중국집에서 논쟁하는 신에선 한심하잖아. 논쟁에서 밀리고 할 말 없어지니까 갑자기 “너 똑똑하구나” 하면서.(웃음) 그러면서 나이 따지고, 호구조사나 하고 말이야.

‘맨스플레인’과 ‘호구조사’는 함께 갈 수밖에 없는 짝궁이지. 그러니까 말이다. 내가 쉰 살이 넘어서 안 하기로 마음먹은 몇 가지가 있다. 나이가 몇이냐, 결혼은 했냐, 연애는 왜 안 하냐, 그 나이엔 데이트도 하고 해야지 같은 말들. 전형적인 꼰대짓이고 폭력적인 질문들이다. 아, 학번 묻는 것도 그렇다. 우리 아이도 고등학교를 안 다니고 검정고시를 봤는데, 학생증을 요구 받을 때마다 참 답답했다. 말을 쉽게 안 꺼내게 되니까 오히려 그 사람을 섬세하게 관찰하게 되고, 호구조사로 알 수 있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걸 알 수 있게 된다.

하와이안 셔츠는 비바스튜디오, 안경은 키블리.

듣다 보니 권해효와 봉완은 너무 다른 인물이다. 난 오히려 그런 배역이 좋다. 지금까지 연기하면서 나한테 “이건 꼭 권해효 씨가 해야 해요, 권해효 씨 생각하면서 썼어요”라고 말하는 작품 치고 제대로 된 작품 본 적 한 번도 없다. 그건 새로울 게 없다는 뜻이고, 전에 했던 흥행이 잘된 작품들의 캐릭터를 가져오는 일종의 차용이다. 캐스팅에 대해 할리우드 배우들이 하는 이야기가 있다. 캐스팅에 임할 때 세 가지 조건 중 두 가지가 충족되면 한다는 이야긴데, 첫째는 개런티, 둘째는 로케이션, 셋째는 캐릭터다. 예를 들어 로케이션은 시베리아인데 배역이 좋고 돈을 많이 준다면, 한다. 배역은 거지 같은데 돈을 많이 주고 로케이션은 하와이라면, 한다. 만약에 세 조건 다 충족된다면 거울을 봐라, 아마 넌 톰 크루즈일 거다.(웃음) 난 소박하다. 캐릭터 하나만 보니까. 내가 안 해본 걸 하고 싶다.

봉완은 권해효가 안 해봤던 인물이긴 하다. 그는 수동적인 인물로, 등장하는 모든 여성들에게 비겁하다고 비난 받는다. 연인 창숙(김새벽), 아내(조윤희), 첫 출근한 직원 아름에게까지도 그렇다. 그게 현상을 유지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인물이니까. 가정도 연인도 놓치고 싶지 않고, 양쪽에게 욕먹지 않으려면 비겁해질 수밖에. 결국 스스로에게 가장 비겁한 사람이다.

반면, 아름은 이전 홍상수 영화의 여자들에 비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 때부터 이 변화가 감지됐다. 중심축이 여성으로 옮겨갔다. 특히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앵글부터 시작해서 새로운 변화가 많이 담긴 영화다. 그 외에도 홍상수 영화는 변화해왔다. 대표적인 게, 섹스 신이 없어진 지 꽤 됐다. 언젠가 내가 “형 영화에 언제부터 섹스신이 없어졌다”고 하니, “사랑하는 관계에서 섹스를 제외하고 진짜를 이야기하기 힘들다고 믿던 시절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 그 장면을 찍는 스스로가 흥미를 잃고 있다는 걸 알았다”고 하더라. 변화라는 건 다름 아니고 지금, 오늘 느끼는 자기 충동에 충실한 거다. 그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과 가장 가까운 방식으로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이니까.

홍상수 감독의 일련의 스캔들 이후, 그의 사적 서사가 영화와 겹쳐 보이는 지점들이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됐다. 그러다보니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서 권해효가 하는 대사들, “그냥 가만히 두면 되지 왜 이렇게 난리를 치는 거야?” 같은 말들이 홍상수와 김민희의 관계를 옹호하는 것 아니냐는 질타도 있었다. “권해효 씨 실망이에요” 같은 댓글 많이 봤다. 사실은 뭐, 당연히 그렇다. 홍상수 감독은 지금 자신의 이야기, 자기를 움직이게 하는 이야기를 늘 생각하는 감독이다. 그런데 그걸 빼놓고 이야기할 순 없겠지. 촬영 전에 대본을 받아 보면서 그의 대범함이 어디까지일지 놀랍긴 했다. 이렇게까지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진 않아도 될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고. 하지만 그에겐 자기기만에 대한 극도의 결벽이 있다고 해야 할까. 자신 앞에 놓여 있고, 영향을 끼치고 있는 일을 굳이 피해가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건 결국 영화다. 맞다. 그렇다고 한들 이게 홍상수 자신의 이야기인가? 그건 또 전혀 아니다. 모든 게 섞여 있다. 영화적 허구를 기반으로 함께하는 배우들의 이야기도 섞여 있다.

술자리에서 나눈 대화를 종종 그대로 쓰는 것도 홍상수 감독의 특징이다. 이번 영화에서 권해효의 이야기도 들어 있나? 극중에서 목에 주름이 하나도 없다고 자랑하는 것. 술자리에서 가끔 피부 좋단 말 들으면 농담으로 하는 얘기인데, 대사에 그대로 써놨더라.(웃음)

중국집에서 11분짜리 롱테이크로 찍은 믿음에 대한 긴 논쟁 신이 인상 깊더라. 그 신에서 아름이 대뜸 물었던 걸 묻고 싶다. 권해효는 왜 사나? 봉완이 하듯 지적인 선문답을 하고 싶진 않은데….(웃음) 왜 사냐고 물으면 삶의 목적이 있어야만 삶이 완성되는 것 같지 않나?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그냥 살아 있으니까 사는 건데, 기왕 사는 거 어떻게 살지? 이렇게 생각하는 게 더 온당한 것 같다.

아름처럼 믿음을 지니고 사는 편에 가깝나, 봉완처럼 회의적인 불가지론에 가깝나? 반반이다. 완벽한 믿음의 대상이 존재할 수 있을까. 나는 모태신앙이지만 지금은 냉담자라. 그런 식으로 자위는 한다. 1962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가톨릭은 구시대의 과오에 대해 사과했고 변화를 모색했다. 유일신에 대한 개념을 확장시켰다고 하지. 나는 그 이후로 ‘예수’라는 이름을 ‘사랑’이라는 단어로 대체하면 모든 게 괜찮다.

신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믿음, 인간에 대한 믿음인가? 맞다. 아름의 그런 대사도 있지 않나. 세상이 아름다울 것이라고 믿는다고. 그건 단지 신에 대한 믿음만이 아니다. 지금 겪고 있는 고통들까지도 나는 감내하려고 마음먹었어, 라고 들리는 대목이다. 뭐 여기서 감독의 사적인 서사까지 또 얘기할 필욘 없겠지만. 그 믿음은 그러니까 바람 같은 거다.

피케 티셔츠는 H&M, 리넨 팬츠는 자라, 블레이저는 라르디니, 슈즈는 브로이어, 선글라스는 키블리.

“소품으로 쓴 사과상자에 앉을 걸 권하자, 권해효는 박자를 맞추고 노래를 불렀다. 포즈는 따로 주문하지 않았다. 그게 이 스튜디오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일인 듯 보였다.”

권해효는 사람의 선의를 믿는 편인가? 그렇다. 하지만 최근 몇 년은 그것이 아주 흔들리는 시절을 보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밑에서 9년간 보내면서, 양극화된 사회를 보면서, 세월호를 보면서 우리 사회에 과연 선이라는 게 존재할까, 회의가 들었다. 그때마다 나를 견디게 해준 건 재일본조선학교 학생들이었다. (그는 그들을 지원하는 단체 몽당연필 대표를 하고 있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 학교를 지키고 있는 학생들을 만나고 올 때마다 인간에 대한 희망을 다시 느끼고 왔다.

마침내 탄핵은 됐고, 새 정권이 들어섰다. 이제 조금씩 정상화되어야지. 하루아침에 모든 게 바뀌진 않을 거다. 며칠 전에도 머리를 자르려고 동네 미용실에 갔더니 아주머니 두 분이 뉴스를 보면서 “삼성 망하게 하려고 저런다”는 둥 하고 계셔서, 머리를 어떻게 깎았는지도 모르겠더라.(웃음) 아마 내년도 지방선거 치러봐야 이 새로운 민주정권이 어떻게 갈 수 있을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어떤 마음 상태일지 알 수 있을 거다.

요즘의 화두를 더 얘기해보자. 최근 페미니즘이 시대의 담론으로 떠올랐다. 2002년부터 호주제 폐지 운동, 2008년엔 여성가족부 폐지 반대 운동을 했고, 17년 동안 한국여성단체연합 홍보대사를 맡아온 페미니스트로서 이 흐름을 어떻게 보고 있나? ‘여성 혐오’라는 개념에 대한 인식이 생긴 건 정말 환영할 일이다. 큰 흐름에서 보면 양극화가 극대화되면서 갑질의 일반화, 소수자 혐오, 약자 혐오가 팽배해졌다. 이명박 정권 이후 한국 사회에서 소득 재분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낙수효과란 말을 썼잖나. 위의 잔이 넘치면 밑의 잔까지 채운다고. 하지만 정작 위의 잔만 커졌고 오히려 나쁜 낙수효과가 있었다. 자기가 당한 피해를 구제하고 시스템을 변화시키려고 하기보단 내가 당한 만큼 남에게 돌려주기, 다른 누군가에게 화풀이하기에 열을 올린 것이다. 이게 작동하는 원리는 공포다. “저것들 때문에 군 가산점 못 받아.”, “저 여자들 때문에 취업이 안 돼.” 이런 식으로 공포가 여성과 약자들에게 향하는 구조가 된 거다.

새 정부도 내각의 남녀 동수를 지향하겠다고 했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20회 국회 여성 비율이 17퍼센트에 불과하다. 소수의 성공한 여성을 보여주며 유리 천장이 다 깨진 것마냥 일반화해선 안 된다. 여자와 함께 일하기 힘들다는 선입견을 버리는 것도 중요하다. 사무실 안에서의 합리적인 토론이 아닌 술자리에서의, 인맥으로의 정치를 통해서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 잘못된 생각들, 남성 카르텔 안에 없는 여성은 의사 결정 구조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는 구조 말이다. 끝나고 술 한잔 먹어야 하는데 쟤는 일만 끝나면 가네? 이런 태도가 바뀌는 게 우선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도태시켜야 해.

변화시키는 게 아니라 도태시켜야 한다는 건가. 과격하고 좋다.(웃음) 사람은 안 변하니까. 난 중학교 3학년 이후로 바뀐 사람들 못 봤다.

배우가 직업인 시민활동가라고 할 정도로 약자와 소수자들을 위한 사회 운동을 꾸준히 해온 원동력이 있다면 뭘까? 예전엔 부끄러움이었다. 독재와 싸우던 시절에 함께하지 못한 부끄러움이랄까. 1987년 6월 항쟁 때 나는 군대에서 진압훈련을 받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했지만 이제는 이런 활동들이 그저 기쁨이고 행복이다. 직업으로서 배우에 대해선 일정 정도 거리두기를 하고 시민운동가들과 더 가깝게 지내는데, 이게 어쩌면 27년간 부침 없이 배우로 살아올 수 있었던 자산인 것 같다. 사실 좋은 배우가 된다는 건 제 3자가 그렇게 봐줄 때 가능한 것 아닌가. 그 막연한 걸 좇기 보다는 좋은 시민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더 생각을 해보려 했다. 지금도 그 선택은 잘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분명히 내일이 더 힘들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 나는 오늘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있을 거란 희망을 갖고 사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 아닌가.

목표를 갖고 사는 편은 아니지만 기왕 사는 거 어떻게 살자, 라는 생각은 한다고 했다. 쉰을 넘긴 지금, 지향하는 바는 무엇인가? 잘 나이 드는 것. 꼰대가 되진 말아야지. 뭐, 불쑥불쑥 가르치려 들 순 있겠다. 내가 못 견뎌하는 게 몇 가지 있거든. 이를테면 젓가락질 잘 못하는 거. 목구멍까지 말이 올라와도 참아야지.(웃음) 그렇다고 애써 젊게 살겠다는 뜻도 아니다. 젊은 세대들이 “저 아저씨 괜찮네?”라고 할 정도면 된다. 젊을 땐 대한민국에서 마흔 넘은 것들은 다 입 다물어야 한다고 했는데 이젠 내가 50대가 되어 있다. 나이값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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