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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위의 주인공, 컨버터블 자동차 5

2017.06.29이재현

여름엔 오픈 에어링이라지만, 컨버터블 기능은 이제 토익 700 만큼이나 흔하디흔한 재주. 컨버터블 토핑을 더한 희귀종이어야 아스팔트는 비로소 당신의 독무대가 된다.

여명을 울리는 종 ㅣ 롤스로이스 던 단지 가격 때문에 롤스로이스가 VIP 대접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지켜온 브랜드 가치에 실망시키는 법 없던 성능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롤스로이스를 만들었다. 던은 롤스로이스의 새로운 아침을 알리는 컨버터블이다. 젊어졌으되 묵직하고, 섹시한 몸매로 다듬었으되 요란하지 않다. 던의 루프는 캔버스로 덮었다. 4억 5천만원이라는 가격을 고려한다면 어색한 만남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질 좋은 면이 캐시미어보다 쾌적할 때가 있듯, 던의 소프트톱은 소재 이상의 가치가 있다. 표면을 매끈하게 처리하고, 천 솔기를 뒤집어 기워 마감 자국을 숨기는 프렌치 심 French Seam기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공기 흐름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최소화해 내부는 풍절음 없이 여명처럼 고요하다. 반면 V12 6.6리터 트윈터보 엔진의 공세는 맹렬하다. 최고출력 563마력, 최대토크 79.5kg·m의 힘으로 뒷바퀴를 굴린다. 2.5톤이 넘는 거구지만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킬로미터까지 5초면 충분하다.

 

천연기념물 로드스터 ㅣ 로터스 엘리스 엘리스는 손으로 직접 캔버스 톱을 걷어내야 할 만큼 불친절하다. 힘겹게 알루미늄 터브 Tub섀시의 벽을 넘어 시트에 앉으면 1그램이라도 줄여보겠다며 자비 없이 걷어낸 인테리어 때문에 당황스럽기도 하다. 게다가 수동변속기 버전만 있어 엘리스 7대 찾기보다 드래곤 볼 7개 찾기가 쉽다면 쉬울 것이다. 최고출력은 136마력, 최대토크는 16.7kg·m로 스포츠카라고 표현하기엔 조금 멋쩍은 힘이다. 그러나 엘리스는 가벼운 차체로 승부하자는 가훈을 대대로 이어온 로터스가의 주니어. 엄연히 운전하는 기쁨을 위해 탄생한 차다. 900킬로그램도 되지 않는 무게로 전성기때 성룡이 공중제비 돌 듯 날래게 움직인다. 토요타에서 가져와 시트 뒤에 얹은 직렬 4기통 1.8리터 엔진이 아쉬울 겨를도 없이. 다이어트를 향한 집착 때문에 파워 스티어링 따위는 과감히 생략해 적응하려면 고생 꽤나 할 테지만, 국내 몇 안 되는 차주라는 보람이 보상할 것이다. 천연기념물은 아무나 키울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미니멀리즘 펀카 ㅣ 스마트 포투 카브리오 스마트 포투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세 가지 있다. 첫 번째는 리어엔진에 후륜구동이라는 점이다. 가속페달을 밟으면 퇴근을 5분 앞둔 금요일의 직장인처럼 엉덩이를 들썩거린다. 두 번째는 컨버터블 모델이 있다는 사실이다. 푸른 하늘을 영접하려면 상단 섀시를 수작업으로 떼어내는 수고를 감내해야 해도, 분리한 부품을 트렁크에 차곡차곡 담아두게 한 설계에 감탄이 나온다. 마지막은 작명법이다. 포투 For Two는 말 그대로 2인승(포포 For Four는 4인승)을 뜻한다. 3세대로 진화하면서 너비 기준을 살짝 넘겨 더 이상 경차 혜택을 받지 못해 아쉽지만, 후륜구동에 컨버터블, 그리고 2인승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날렵하면서도 지루할 틈 없이 운전할 수 있는 속성을 병아리콩만 한 덩치에 꾹꾹 잘도 눌러 담았다. 터빈을 단 직렬 3기통 0.9리터 가솔린 엔진이 내는 최고출력 90마력도 995킬로그램의 미니어처 같은 차를 이끄는 데 힘든 기색이 없다.

 

몽상가를 위한 크로스오버 ㅣ 레인지로버 이보크 컨버터블 컨버터블은 스포츠카의 상징이었다. 루프를 열고 정수리에 달린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특권은 낮은 포복 자세로 도로에 바싹 붙은 차에만 허락된 것 같았다. 지난해 이보크 컨버터블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사실 SUV와 컨버터블의 조합은 이보크 컨버터블이 처음은 아니다. 닛산 무라노가 미국에서 컨버터블로 출시된 적은 있다. 결과는 콜드게임 참패. 이번에는 다르다. 부전공자가 아니라 SUV만 공부한 랜드로버의 작품이다. 토실토실한 차체의 윗동을 시원하게 벗겨서일까? 이보크 컨버터블에 앉아 있으면 조카 전동카를 뺏어 탄 삼촌처럼 보일 수 있다. 독특한 실루엣은 희귀한 차가 된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이 별종은 그 맛에 타는 차다. 게다가 컨버터블을 마음에 둔다는 건 이미 주변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산물. 이보크 컨버터블은 마흔이 넘어서도 스냅백을 살포시 얹을 줄 아는 사람을 위한 크로스오버다. 늙은 혁명가보다는 젊은 몽상가, 당신에게 어울린다.

 

악당에게 끌린다면 ㅣ 재규어 F-TYPE 컨버터블 할리우드 영화에서 재규어는 항상 악당의 차로 등장한다. 뒤집히고, 물에 빠지고, 007이 쏜 회심의 한 방에 폭발하기 일쑤다. 억울한 만도 하다. 재규어도 주인공이 탄 애스턴마틴처럼 멋지게 총알 사이로 드리프트할 자신이 있을 텐데. 하지만 언젠가부터 선역보다 악역에 끌린다면, 톰의 공격을 약 올리듯 피하는 제리가 얄밉기 시작했다면 재규어 F-타입을 찾을 나이다. 대단한 사건이라도 벌일 양 음흉하게 치켜뜬 헤드램프와 테일램프만 봐도 역시 양지보다 음지가 어울리는 관상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높은 엔진 회전수에서 스로틀이 닫히면서 터지는 백 프레셔는 양산차 중 가장 ‘더러운’ 소리다. 멈출 때가 된 것 같은데, 여자친구 뺏긴 야생 재규어처럼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8기통 도 필요 없다. 6기통 엔진을 심은 F-타입 S 정도로도 충분히 섹시한 악당이 될 수 있다. 단, 정면 대결을 피하지 않아야 한다. 루프를 열고 당당히 얼굴을 내놓을 수 있는 컨버터블이어야 악당 중의 악당이다.

    에디터
    이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