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마블 <퓨처파이트> 해보셨나요?

2017.09.06정우영

이 글을 마블로 시작하는 게 맞을까, <퓨처파이트>로 시작하는 게 맞을까. 확실한 것은 <퓨처파이트>를 시작하기 전의 마블에 대한 관심은 나영석 PD가 페미니즘에 대해 가지는 관심 정도였다는 것이다. 올해 초 우연히 앱스토어를 검색하던 중 발견하고 ‘마블 슈퍼 히어로 게임이 다 있군’ 하면서 다운받아 딱 한 번 실행시켜본 게 시작이었다. 6월호 마감을 동료들보다 일찍 끝낸 뒤 스마트폰 앱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그게 끝이었을 거다. 오랜만에 접속하니 ‘고급 6성 진급권’과 각종 선물이 도착해 있었다. 유일하게 좋아하는 마블 영화 <가디언즈 오브 더 갤럭시 VOL.2>를 본 터라 피터 퀼을 6성으로 만들면 어떻게 되는 건지 궁금했다. 하지만 뜬금없이 그루트를 6성으로 진급시켰고, 그것이야말로 ‘시작’이었다. 최상급의 표현이 ‘플래티늄’이 아닌 ‘비브라늄’으로 통용되는 세계의 시작.

이왕 시작한 거 ‘가디언즈 오브 더 갤럭시’나 끝까지 키워보자 싶었다. 하지만 그만두는 게 있을 뿐 끝은 없다는 걸,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을 해본 역사가 전무했던 사람은 잘 몰랐다. ‘고급 6성 진급권’은 하나의 스테이지를 깰때마다 일정 확률로 나오는, 해당 영웅의 생체 데이터 총 630개로 도달하는 ‘별 여섯 개 등급’으로 한 번에 올려주는 아이템이다. 그런데 그루트를 6성으로 올렸더니 마스터리도 6등급으로 올리라고 했다. 6마스터리를 달성하고 보니 티어 2등급이 있었다. 티어 2등급으로 올리기 위해선 장비를 강화해야 하는데, 장비 등급 15부터 20까지는 못 해도 200개 이상의 생체 데이터와 차원의 파편, 장비 강화 키트 등이 추가로 필요했다. 여기까지 끝내면 티어 2등급을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한 달 동안 매일 출석해 티어 2등급권을 받거나 생체 데이터 150개, 영웅 타입별 노른스톤 300개, 암흑 반물질 800개, 혼돈의 노른스톤 1천 개가 있어야한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순간이 없었던 건 아니다.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에디터 같은 사람일수록 그 정도의 시간과 노력이 무의미하다는 자각을 금세 할 것이고 쉽게 손을 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퓨처 파이트>의 무서운 점은, 게임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당신은 이 게임 속 캐릭터에 대해 안다는 것이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라는 말을 비웃었다. <아이언맨>을 재밌게 봤고, <어벤져스>를 안 본 건 아닌데, ‘캐릭터’나 ‘서사’에 몰입하기엔 제작사도 감독도 관객도 잘 알 듯이 그건 ‘엔터테인먼트’였다. 하지만 <퓨처 파이트>를 하다 보니 그 세계관을 이해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는 부분이 있었다. 에이전트 베놈은 왜 베놈과 달리 빌런이 아닌 영웅에 속하는지, 영화와 달리 모르도는 왜 흑인이 아닌지 하는 등의 호기심이 있었고, 특수 임무 ‘인 휴먼스’ 에서 어떤 캐릭터를 먼저 가질지 결정해야 하는 실질적인 부분도 있었다. 영화 <토르> 시리즈, 드라마 <에이전트 오브 쉴드>, <루크 케이지> 시리즈 등을 처음으로 봤고, <캡틴 아메리카>, <어벤져스>, <아이언맨> 시리즈를 모두 다시 봤다. 전부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걸 보느니 게임 공략 영상을 보는 게 나았을 텐데….

소니의 스파이더맨은 2017년에야 마블에 합류했고, 엑스멘 판권은 아직 폭스가 가졌다. 마블에서 제작하는 영화는 넷플릭스의 <디펜더스>나 ABC의 <인 휴먼스> 등을 마블 유니버스에 없는 존재인 듯 취급한다. 하지만 이 모든 캐릭터가 속한 <퓨처파이트>라는 세계가 있다. 특정 영화와 드라마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은 ‘팬’이지만 <퓨처파이트>에서는 ‘요원’이다. 마블의 일원이 되고 싶어 방황했던 것이다.

<퓨처파이트>에서 가장 세다고 알려진 셋은 닥터스트레인지, 오딘, 타노스다. 오딘과 타노스는 너무 머나먼 길 같아 닥터스트레인지 에픽 퀘스트를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엑스멘 에픽퀘스트가 나왔다. 처음으로 유료 결제를 했다. 매그니토를 사지 않으면 어느 세월에 에픽퀘스트를 완료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고, 진 그레이를 플레이해보고 싶었다. 이젠 이 세계에 대해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키울 만큼 키운 것 같아서 도전했는데 처참히 깨지는 임무가 수두룩했다. 사람들이 게임 공략 영상을 찾아보는 이유를 납득했다. 그때까지 <퓨처파이트>를 디자이너의 감각으로 하고 있었다. 캐릭터와 그들의 스킬과 팀의 구성을 통해 모종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선 스포츠가 필요했다. 장비 강화와 카드는 어떤 옵션에 중점을 둘지, ISO-8은 캐릭터별로 어떤 세트 효과를 줄지, 팔 각도를 올리라고 조언하는 투수코치의접근 방식이랄까. 그리고 문득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아…. 나는 아직 반도 안 왔구나.’

하지만 스포츠의 세계로 진입하자 만나는 건 ‘훈련’이 아닌 ‘일정 확률’이었다. 애초에 이 게임의 기본인 생체 데이터를 얻는 것 자체가 확률에 기초하지만, 장비 강화, 장비 강화 세부 옵션, ISO-8 세트 효과 등 많은 부분이 그랬다. 참고 견뎌야 하는 스포츠의 반복 훈련을 게임에서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게임에서는 반복 훈련의 자리에 ‘일정 확률’과 이를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과금’이 있었다. 온라인 게임이 게임이 아닌 도박으로 비화되는 부분이었다.

한 게임의 당당한 일원이 되고 싶은 마음, 끝까지 가보고 싶은 마음이 자신의 경제 규모에 맞지 않는 무리한 투자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이것이 스포츠라는 확고한 믿음이다. 스포츠에도 재능이라는 모호한 영역이 있고, 운과 돈이 뒷받침되었을 때 더 크게 성장해나가곤 한다. 하지만 어떤 것도 스스로 결정할 수는 없다. 스포츠 선수에게 배우는 게 좋겠다. 단 하루의 예외도 없이 그날의 임무를 하는 것,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것. 결과도 보장하지 못하고 끝도 알 수 없지만충실한 하루는 분명히 있다. 시시하지만 자신있게 말 할 수 있는 한 가지는, 그루트를 6성으로 진급시킨 이래 <퓨처파이트>의 일일 도전 과제는 단 하루도 빼먹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 광고 뭘까 하면 모바일 게임 광고다. 휴대전화를 가로로 들었다 하면 여지없이 모바일 게임이다. 에디터가 하루의 한 뭉텅이를 잘라내 한 달간 모바일 게임에 몰두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이어졌다.

    에디터
    정우영
    일러스트레이터
    유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