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S/S 시즌이 시작된다. 꽃보다 아름다운 옷이 차고 넘친다.
1 – Full Bloom
꽃이 폭발하듯 내려와 여기저기 아름다운 흔적을 남긴다. 하와이안 프린트부터 로코코 양식에서 영감을 받은 섬세한 잎사귀까지. 1930년대 벽지처럼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교묘히 섞여 향락에 젖는다. 마치 꽃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웃는다. 이 유행은 여름이 가면 끝나겠지. 꽃은 태양이 있어야 예쁜 색을 얻으니까. 가장 격렬한 시즌으로 기억될 올해 봄엔 논리적이거나 합리적인, 혹은 기능적인 옷 입기는 잠시 잊어야 한다. 실크처럼 탐스럽고 윤택한 소재가 더해져 뜻밖의 호사를 맛볼 수밖에 없으니까. 밤이고 낮이고 꽃처럼 피고 싶다면 프라다의 하와이안 프린트 셔츠 하나쯤 미리 사두시라.
2 – Beautiful Boy
찬란한 시절, 소년이라 부른다. 낭비되는 시간조차 아름답다. 보이스카우트부터 대학생까지 모두 모였다. 미성숙한 아름다움과 채우지 않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룩.
3 – T-Shirts
흰색 티셔츠는 1만원짜리도 예쁘다. 남자의 특권이랄까. 구겨지면 구겨진 대로 멋있고, 더럽거나 헤져도 나름의 분위기가 있다. 이런저런 얼굴을 갖고 있어서, 여덟 가지 얼굴을 가진 활달한 그리스 할머니 같다. 세상에서 가장 간결한 옷이 흰색 티셔츠라지만 단순한 옷을 잘 만드는 건 백자를 빗는 것만큼 힘든 일이다. 모든 게 그렇듯 덜어내기란 쉽지 않으니까. 올해는 지나치게 잘 만든 흰색 티셔츠가 많다. 랑방, 에르메스, 발렌티노처럼 대부분 좀 값이 나가는 것들이지만. 머리만 쏙 넣어 어깨에 걸치면 별다른 장치 없이도 마라케시의 정원보다 은밀하고, 졸부의 샹들리에보다 화려해 보인다.
4 – Blouson
블루종은 경쾌하고 무겁지 않으니, 낮을 위한 이브닝 재킷이라 부르고 싶다. 다 늘어진 민소매 티셔츠와 입어도 경박하지 않고 셔츠에 타이를 매도 예쁘다. 특히 스웨이드로 만든 파란색 블루종을 입은 남자는 다듬지 않은 원석처럼 숭고하기만 하다. 캘빈클라인 컬렉션과 하이더 아커만의 블루종은 소재와 색깔이 거의 몽환적인 조화를 이룬다. 블루종은 전통적인 방식대로 짧고 딱 붙게 입으면 고상해 보이지만, 알렉산더 왕이나 발망이 만든 것처럼 넉넉하게 입으면 느긋해진다. 좀 긴 트레이닝 점퍼나 후디와 입으면 베를린에 사는 청년 같기도 하고.
5 – Jump Suit
너무 흔해서 유행이라고 단정 지을 옷이 아니다. 거대한 영향력을 가진 브랜드의 디자이너가 선택함으로써 논의되는 옷과는 다른 이유로 아름답다. 고급스러운 시계가 어울리고, 바람 부는 밤의 대리석 바닥이 어울리는 점프 수트. 랑방, 에르메스, 발망처럼 프랑스를 대표하는 전통적인 메종에선 이 옷을 테일러링 수트 사이에 두었다. 새로운 점프 수트의 존재감 때문에. 랑방이 만든 실크에 가죽을 덧댄 점프 수트를 보고 있으면 남성복의 새로운 방향이 보인다. 갖춰 입는 나폴리식보단 흩어진 멋을 아는 파리식 남자에게 어울린다.
- 에디터
- 오충환
-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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