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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션 없는 아디다스 신발 등장! 바이브람 파이브핑거스 대항 될까?

2026.04.27.조서형, Adam Cheung

커피의 카페인으로 자극이 부족하다면, 에너지 드링크를 마셔도 될까? 에너지 드링크로 삶을 이어 온 남자와 전문가가 함께 얘기를 나눴다.

내 이름은 매튜다. 내 삶은 셀시우스, 레드불, 씨포, 뭐든 손에 잡히는 에너지 드링크로 돌아간다. 이건 내 이야기다.

어느 순간부터 커피로는 부족해졌다. 사회적으로 가장 무난한 카페인 섭취 방식이 더 이상 나를 깨워주지 못하게 된 시점이 언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변화는 내 인생의 방향을 바꿔놓았다. 이제 인생의 세 번째 10년을 막 시작하는 시점에서 나는 깨달았다. 정말로 액체 한 방으로 잠을 깨고 싶다면, 주변 사람들이 무섭다거나 미쳤다거나, 내가 제일 좋아하는 표현으로는 “그거 절대 몸에 좋을 리 없잖아”라고 말하는 수준의 카페인이 들어간 음료를 마셔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해두자면, 나는 여전히 커피를 좋아한다. 매일 아침 집에서 소박한 블랙 커피 한 잔으로 뇌를 깨운다. 그리고 그 맛과 아침 루틴을 좋아하기 때문에 사무실에 도착해서 한 잔 더 마시기도 한다. 날씨 좋은 날 아이스 커피의 유혹에도 약하다. 하지만 나에게 진짜 에너지를 주는 것은 355에서 473밀리리터 정도의 캔에 담긴, 점퍼 케이블로 탄산을 주입한 것 같은 강력한 기포 음료라는 걸 알고 있다.

레드불은 나의 첫사랑이었다. 미디어에 민감하던 14살 시절, “레드불은 날개를 달아준다”라는 광고 문구는 나를 정확히 겨냥했다. 트래비스 파스트라나 같은 약간은 거칠고 쿨한 문화 아이콘들과 연결된 이미지 역시 이 음료가 어딘가 세련되게 무모하다는 인상을 줬다. 레드불은 비행기 레이스를 후원했고, 사람들이 직접 만든 비행 장치로 경쟁하는 대회도 열었다. 맛이 어떻든(괜찮은 수준) 에너지 효과가 어떻든(전기처럼 강렬한 수준), 레드불을 마신다는 건 세상에 “나는 정말 멋진 사람이고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일이었다. 라이언 쿠글러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거기에 빠져들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나는 레드불을 습관처럼 마시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별 생각 없이 벌어지는 교외 파티 전에 기분을 끌어올리기 위해서였다. 조금 얌전하게 굴 때는 파란색과 은색 캔이 일종의 약한 애더럴처럼 작용했다. 허술한 파워포인트나 급하게 쓴 에세이를 만들 때 항상 손이 닿는 곳에 있었다. 한 모금 마실 때마다 ‘리미트리스’에서 브래들리 쿠퍼가 약을 먹고 느끼는 두뇌 각성 효과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레드불 시대와 동시에, 우리 동네에는 또 다른 존재가 스며들고 있었다. 포 로코였다. 카페인이 들어간 알코올 몰트 음료로, 사실상 악마 같은 존재였다. 친구들과 가볍게 취하려고 모이던 주차장, 지하실, 숲속 어디에나 있었다. 카페인이 제거되기 전의 원래 포 로코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특정 세대에게 이 음료의 이름만으로도 거의 죽을 뻔했던 경험이나 인생의 중요한 사건을 떠올릴 때처럼 눈이 커지는 반응을 유발한다. 우리보다 몇 시간 거리의 대학생들이 이걸 마시고 병원에 실려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조차, 우리는 오히려 더 자부심을 느꼈다. 두 캔을 마시는 건 일종의 훈장이었다. 나는 대형 주택의 화려한 주방에서 아이들이 이걸 단숨에 들이켜는 모습도 봤다. 복숭아 맛이 최고였다는 데에는 나름의 확고한 의견이 있다. 포도 맛은 솔직히 금지된 게 맞다. 어쨌든 이걸 손에 넣기만 하면—게다가 포 로코는 말도 안 되게 쌌다—우리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상태로 올라갔다. 이런 엄청난 에너지가, 자신을 무적이라고 믿던 어린 아이들에게 쏟아지면서, 소중하지만 후회되는 기억들을 만들어냈다. 때로는 친구들과 차고에서 청춘을 털어놓으며, 한 손에는 보우플렉스 기구를 붙잡고 다른 손에는 포 로코를 들고 있는 그런 순간들이 관계를 단단하게 만든다.

포 로코의 가장 큰 문제이자 동시에 우리를 계속 끌어당긴 이유는, 취하게 만들면서도 잠들게 하지 않는 거의 유일한 존재였다는 점이다. 이 사실은 카페인에 대한 나의 집착을 더 키웠고, 결국 나는 이것이 나의 상시적인 악습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 식품의약국이 개입하기 전까지 포 로코는 나의 ‘밤의 레드불’이었다. 하지만 정부가 카페인을 제거하자, 즐거움도 함께 사라졌고 더 이상 같은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대학 시절에는 포 로코 없이 지냈지만, 대신 레드불은 훨씬 많이 마셨다. (대부분은 캠퍼스 상점의 가격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해 소소한 절도로 해결했다.) 많은 친구들이 처음으로 커피에 빠져들던 시기였지만, 이미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매일 커피를 마셔온 내 몸은 더 강한 자극을 원했다. 내 대학 졸업장은 레드불 자국이 묻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최근 몇 년 사이 에너지 드링크 시장이 크게 확장되면서, 내 시작을 함께한 레드불은 이제 다소 소박하게 느껴진다. 블룸, 알라니 누, 락스타 에너지 같은 브랜드들이 새로운 맛과 영리한 마케팅을 내세우며, 무엇보다 더 많은 카페인을 음료에 넣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는 에너지 드링크 르네상스의 한가운데에 있고, 그 결과물은 정말 장관이다. 고대 문명이라면 상상도 못했을 맛—코스믹 스타더스트, 스노볼 프로스트, 시리얼 킬러 같은—이제는 전국의 주유소에서 약 5달러, 한화 약 7000원 정도에 살 수 있고, 마시면 천재가 된 기분까지 들게 한다.

이 새로운 세계 속에서 셀시우스는 나의 최애로 자리 잡았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레드불보다 맛있다. 라즈베리 피치, 체리 콜라, 스트로베리 패션프루트 같은 맛은 내 미각 자체를 다시 설정해버렸다. 이런 맛있는 에너지 드링크가 존재할 줄은 몰랐다. 다이어트 콜라가 냉장고 속 담배라면, 셀시우스는 냉장고 속 사탕이다. 둘째, 오후 3시에 사워 패치 키즈 한 봉지를 먹는 것과 달리, 셀시우스는 급격한 피로감이나 성인이 공공장소에서 사탕을 먹는 민망함, 속 불편함 같은 부작용이 없다. 세련되고 눈에 띄지 않는 디자인 덕분에, 에너지 드링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냥 탄산수로 착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다른 어른들이 내가 셀시우스를 들고 있어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맛을 떠나 내가 셀시우스를 선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효과다. 한 캔에 200밀리그램의 카페인이 들어 있어, 집중이 필요할 때나 밤새 놀기 전 체력을 끌어올릴 때, 혹은 낮잠 후 다시 세상으로 돌아올 때 항상 찾게 된다. 일반 커피 한 잔으로는 셀시우스에 들어 있는 과라나와 녹차 추출물의 조합을 따라갈 수 없다. 이 둘은 마치 안드레 3000과 빅 보이처럼 협업해 내 창의력을 끌어올리는 사운드트랙을 만들어낸다. 이메일, 슬랙 같은 지루한 업무들도 셀시우스를 마시는 순간 생산성의 연료로 바뀐다. 하기 싫은 일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오후에 좋아하는 에너지 드링크를 마실 수 있다는 기대와 연결되기 시작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퍼포먼스 향상제’에 가까운 존재였다. 그러다 더 강력한 새로운 존재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호기심 많은 소비자로서 나는 씨포 퍼포먼스 에너지의 등장을 주목하게 됐다. 이 음료는 설탕과 인공 향료가 없고, “폭발적인 에너지”와 “비교 불가한 맛”을 제공하며, “퍼포먼스를 향상시키고 지구력을 강화한다”고 광고한다. 셀시우스가 절제된 느낌이라면, 씨포는 완전히 정반대다. 슬로건은 “탁월함의 위험을 감수하고 마셔라”로, 주 타깃은 고중량 운동 전에 강력한 에너지를 원하는 헬스 매니아들이다. 내가 이걸 마시고 헬스장에 가느냐고? 아니다. 장거리 달리기를 하느냐고? 그것도 아니다. 베타알라닌과 시트룰린이 만들어내는 얼굴 따끔거림은 단지 내가 더 또렷하게 깨어 있기 위한 것일 뿐이다. 만약 내가 쓴 글을 읽어봤다면, 높은 확률로 씨포의 힘을 빌려 쓴 글일 것이다. 커피가 심심하게 느껴질 때, 망고 푸에고 맛 씨포는 최고의 선택이다.

물론 이렇게 많은 카페인을 섭취하는 데 따른 건강 문제도 있다. 텍사스의 17세 고등학생 라리사 니콜 로드리게스는 에너지 드링크 과다 섭취로 심장이 비대해졌다는 가족 주장과 함께 사망했다. 레딧 에너지 드링크 게시판에서는 중독을 느끼는 사람들, 하루에 여러 캔을 마시는 것이 우울증을 가리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하는 글들, 임산부 주의 문구가 붙어 있을 정도면 좋은 음료라는 농담 같은 이야기들이 오간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하루에 여러 캔을 마신 적은 없고, 정오 이후에만 마신다. 그 게시판도 이 글을 쓰면서 처음 알게 됐다. 내가 에너지 드링크를 찾게 된 이유는 단순히 어디서든 가장 졸린 사람이었고, 아무리 잘 자도 계속되는 무기력함 때문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나는 가만히 있지 못하고 다리를 떨거나 1.5배속으로 말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늘 느긋하고 여유로운 서부 해안 스타일의 인간이다. 다만 내 에너지가 원래 낮은 편이라는 걸 인정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그게 문제가 될 때—너무 느긋해서 잠들어버릴 정도라면—이렇게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카페인을 과하게 섭취하는 것이 하나의 해결책이 됐다. 돌아보면 나는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책을 찾았다는 점에서 스스로가 자랑스럽다. 낮 동안의 만성적인 졸림이라는 문제를 타우린으로 해결한 셈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흘려보내기보다 행동으로 옮긴 결과다. 다행히 늦은 오후나 저녁에 에너지 드링크를 마셔도 수면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인생에서 무언가에 빠져 있는 건 나쁘지 않다. 그게 햇빛이나 단백질 같은 자연적인 에너지보다 덜 건강한 것일지라도. 동료들이 “푸에고”나 “바이브” 같은 이름이 적힌 음료를 내가 따는 걸 보고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는 정도의 문제라면, 나는 계속 에너지 드링크를 마실 것이다.

다만 몬스터는 절대 내 근처에 두지 마라. 나는 부모 이혼에 반항하는 사춘기 더트 바이커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