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텍 필립이 대표 스포츠 워치를 가장 본질적인 형태로 다시 꺼내 들었다. 군침이 도는 한정판 모델이다.

현대 시계 디자인의 판도를 바꾼 모델을 꼽으라면 파텍 필립의 노틸러스를 빼놓을 수 없다. 1976년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이 시계는 꽤 충격적인 존재였다. 스틸 소재의 럭셔리 시계, 선박의 현창을 닮은 독특한 형태, 그리고 드레스 워치 수준의 가격까지. 당시만 해도 퍼페추얼 캘린더 같은 클래식한 시계로 유명했던 브랜드에게는 파격적인 시도였다. 하지만 거의 50년이 지난 지금, 제랄드 젠타가 디자인한 이 모델은 논란의 중심에서 가장 상징적인 럭셔리 스포츠 워치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여전히 매장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시계이기도 하다.
모델 출시 50주년을 맞아, 파텍 필립은 2026년 워치스 앤 원더스에서 네 가지 한정판 노틸러스를 공개했다.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기보다는, 오히려 이 시계를 특별하게 만든 요소들, 그러니까 얇은 케이스, 깔끔한 다이얼, 그리고 아이코닉한 현창 형태로 돌아가는 선택을 했다.
미디엄 사이즈 노틸러스의 귀환
이번 라인업의 중심은 레퍼런스 5610/1P-001이다. 플래티넘 케이스에 38mm 사이즈를 갖춘 모델로, 최근 수십 년간 점점 커져온 스포츠 워치 트렌드 속에서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진다. 특히 1980년대 등장했던 미디엄 사이즈 노틸러스, 예를 들면 레퍼런스 3800 같은 모델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현대 노틸러스가 빈티지 감각에서 조금 멀어졌다고 느껴왔던 컬렉터들에게는 정확히 ‘적정선’을 짚은 사이즈다.

케이스 두께는 6.9mm로 매우 얇고, 브러시드와 폴리시드 마감을 교차해 적용한 특유의 구조를 그대로 유지했다. 블루 선버스트 다이얼과 수평 엠보싱 패턴도 클래식한 분위기를 이어간다. 화이트 골드 인덱스와 야광 핸드는 가독성을 높이고, 9시 방향 힌지 안쪽에는 플래티넘 모델의 시그니처인 작은 다이아몬드가 숨겨져 있다.무브먼트는 1977년에 처음 등장한 초박형 자동 칼리버 240이 탑재됐다. 22K 골드 미니 로터를 사용해 두께를 얇게 유지하면서도 자동 와인딩을 가능하게 한 구조로, 이 시계의 슬림한 비율을 완성하는 핵심 요소다.
화이트 골드 ‘점보’ 듀오
플래티넘 모델과 함께, 41mm 화이트 골드 케이스의 두 가지 모델도 공개됐다. 레퍼런스 5810/1G-001과 5810G-001이다. 두 모델 모두 시·분만 표시하는 가장 미니멀한 구성을 택해 디자인 자체에 집중한다. 5810/1G-001은 블루 다이얼과 화이트 골드 브레이슬릿을 조합해 전통적인 노틸러스의 이미지를 가장 충실히 따랐다. 겉보기에는 절제된 느낌이지만, 전체가 귀금속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은근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반면 5810G-001은 네이비 컬러의 컴포지트 스트랩과 크림 스티치를 더해 조금 더 캐주얼하고 스포티한 무드를 강조했다. 다이얼에는 바게트 컷 다이아몬드 인덱스를 적용해 과하지 않으면서도 고급스러움을 유지한다. 두 모델 모두 두께 6.9mm를 유지하며, 플래티넘 모델과 동일한 칼리버 240을 탑재한다. 묵직하게 느껴지는 다른 럭셔리 스포츠 워치들과 달리, 노틸러스의 매력은 여전히 이 얇은 비율에 있다.
책상 위에 놓이는 노틸러스

이번 컬렉션에서 가장 의외의 모델은 레퍼런스 958G-001이다. 노틸러스를 데스크 클록으로 재해석한 첫 시도다.화이트 골드 케이스는 약 50mm 크기로, 둥근 팔각형 베젤과 수평 패턴 다이얼 등 노틸러스의 디자인 요소를 그대로 유지했다. 블루 선버스트 다이얼에는 바게트 컷 다이아몬드 인덱스를 더했다. 후면의 힌지 커버를 열면 수동 와인딩 방식의 8일 파워리저브 무브먼트가 드러나며, 요일·날짜·스몰 세컨즈·파워리저브 표시 기능이 포함되어 있다. 이 커버는 동시에 스탠드 역할을 해 책상 위에 세워둘 수 있다. 최근 1년 사이 테이블 시계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는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이번에 공개된 네 가지 모델은 모두 한정 생산된다. 플래티넘 38mm 모델과 화이트 골드 브레이슬릿 모델은 각각 2000개, 스트랩 버전은 1000개, 데스크 클록은 단 100개만 제작된다. 모든 제품은 1976년 오리지널 노틸러스 3700의 패키지를 떠올리게 하는 코르크 외장 박스에 담겨 제공된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노틸러스는 ‘스포티한 우아함’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시계다. 이번 컬렉션은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기보다, 이 시계를 특별하게 만든 본질인 비율, 단순함, 그리고 디자인으로 돌아간 결과다. 그리고 38mm 모델이 보여주듯, 때로는 가장 좋은 선택이란 처음 잘했던 것을 다시 떠올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