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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에 지은 공간, 작품처럼 액자에 걸어두고 싶은 수영장

2026.05.12.하예진

아트 풀에서 즐기는 영감의 유영.

베르크스슈빔바트 Werksschwimmbad ZOLLVEREIN, GERMANY

©Jochen Tack, Zollverein Foundation

한때 석탄을 태우던 공장은 이제 반짝이는 푸른 수영장으로 변모해 여름을 식힌다. 독일 에센의 졸페라인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폐탄광을 예술과 건축의 실험장으로 재생시킨 공간. 1990년대 폐광 이후 방치될 뻔했다가 2000년대 들어 미술관과 디자인 스튜디오, 전시와 페스티벌이 열리는 문화 공간으로 재가동되기 시작했다. 부지를 따라 걷다 보면, 탄광이었던 과거를 영감으로 삼은 조각과 설치 작품들을 곳곳에서 마주한다. 그중 베르크스 슈빔바트는 옛 코크스 공장 한복판에 해상 컨테이너 두 개를 붙여 만든 수영장으로, 작품 속에서 수영을 즐기며 체험하는 재생 건축이다. 설계자인 디르크 파슈케와 다니엘 밀로닉은 불의 공간을 물의 공간으로 뒤집는 기발한 전략을 택했다. 소음과 열기, 노동을 상징하던 탄광 위에 수영장이라는 대척점의 속성을 얹어, 한여름의 더위를 식히는 휴식처로 재생시킨 것이다. 산업 에너지를 생산하던 자리에서 사람의 에너지가 회복되며 공간의 의미를 이어간다는 의도다. 그런 사회적 조각인 이곳에서의 수영은 과거와 현재가 겹치는 시간을 유영하는 경험이 된다.

홀리 워터 Holy Water HEERLEN, NETHERLAND

기도와 침묵이 머물던 교회가 첨벙거리는 물의 소음으로 채워진다. 수영장으로 변모하는 네덜란드 헤를렌의 성 프란치스코 아시시 교회 얘기다. 100여 년 전 건립된 문화재인 교회는 2023년에 문을 닫으며 새로운 활용 방안을 모색하는 공모전을 열었고, 공공 수영장으로 탈바꿈하겠다는 건축사 M VRDV and Zecc의 아이디어가 채택됐다. 홀리 워터 프로젝트는 교회 중앙의 길게 뻗은 공간인 네이브 Nave를 바닥 높이를 조절할 수 있는 유연한 공간으로 재설계했다. 바닥면을 완전히 들어 올리면 수영장이 평면 공간으로 변해, 문화 행사에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는 무대가 된다. 수심을 얕게 채울 때의 풍경도 장관. 스테인드글라스와 아치형 천장이 물에 반사되어 마치 물 위를 걷는 듯한 신비로운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교회 리뉴얼에서 가장 큰 과제는 역사적인 건축물을 보호하면서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이었다. 기존 예배 벤치는 수영객을 위한 좌석과 바 테이블로 재활용되며, 설교단은 라이프가드 좌석으로서 새 기능을 수행한다. 스테인드글라스와 예술 작품을 보호하기 위한 비책도 철저하다. 수영장을 유리 벽으로 둘러싸 공간을 분리해 습도를 관리한다. 2027년 말 개장 예정.

라 피신 La Piscine ROUBAIX, FRANCE

1932년 개장 이래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영장이라 불리던 라 피신은 노동자들의 몸과 하루를 씻어내던 공공 수영장이었다. 1985년 문을 닫았다가 수영장의 골격을 그대로 유지한 채 2001년 미술관으로 재탄생했다. 성당을 닮은 공공 건축의 문법으로 지은 구조를 고스란히 남겨두어서일까. 이 미술관에 들어서면 특별한 공간감이 감각을 깨운다. 첫인상으로 높은 천장이 여백을 압도하고, 대형 스테인드글라스 창 아래 시간대에 따라 다르게 들어오는 빛의 형형색색 그림자가 수영장 물위에 드리우는 신비로운 풍광은 그 자체로 거대한 예술 작품 같다. 양 측면에 좌우 대칭으로 길게 이어지는 탈의실의 행렬은 공간 전체에 일정한 리듬을 만드는 요소다. 몸을 감추던 작은 방들은 오늘날 작품을 드러내는 전시 공간으로 활용되며 새 쓰임을 찾았다. 리뉴얼을 맡은 건축가 장-폴 필리퐁은 이곳을 단순한 전시장이 아닌, 예술을 유영할 수 있는 유동적인 문화 플랫폼으로 설계했다. 종종 대형 수영장을 무대로 공연과 패션쇼, 낭독회가 흐르는 장면이 펼쳐지곤 하는데, 도노반의 공연부터 안무가 캐롤린 칼슨의 퍼포먼스까지 보석 같은 아티스트들의 작업이 라 피신의 역사와 함께했다.

포르투 모니스 천연 수영장 Porto Moniz Natural Pools MADEIRA, PORTUGAL

대서양의 파도가 끝나는 곳에 바다와 수영장이 맞닿아 있다. 포르투갈 마데이라섬 북서쪽 끝, 작은 어촌 마을 포르투 모니즈에 자리한 이 자연 해수 풀은 화산 용암이 식으며 만들어진 암석 지형 위에 형성됐다. 수천 년에 걸쳐 조각된 바위틈에 바닷물이 스며드는 순간 자연이 만든 맑은 수영장이 드러난다. 밀물에 차오른 바닷물이 투명하게 빛나고, 그 속에 물고기들이 드나드는 구조는 바다가 보내온 초대장. 바다인지 풀인지 경계 없이, 인간의 의도 없이 자연 자체가 프레이밍된 건축물이라는 태생이 이 수영장의 가장 큰 매력이다. 눈앞에서 대서양의 파도가 거칠게 부서지는 가운데 풀 안에서는 바다의 수평선을 바라보는 잔잔한 휴양의 풍경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어린이용 풀과 탈의실, 선베드 등 인간을 위한 최소한의 구조를 더했지만, 이곳의 본질은 여전히 자연에 가깝다. 시간과 우연이 지은 경이로운 풍경 속에 잠시 몸을 맡기는 바다의 조각. 이곳은 바다를 바라보는 수영장이 아니라, 잠시 바다의 일부가 되어보는 수영장이다.

게이트웨이 Gateway WEST LOTHIAN, SCOTLAND, UK

©Owen Humphreys

사람이 들어가는 순간 완성되는 작품이라 불러야 할 이 수영장의 이름은 게이트웨이. 스코틀랜드의 야외 미술관 주피터 아트랜드에는 조각과 건축, 수영장의 경계를 허무는 물의 공간이 숨어 있다. 작가 조아나 바스콘셀로스가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선보인 이 작업은 지름 9미터 규모의 풀을 11,366개의 수공 타일로 꾸몄다. 도자기, 니팅, 크로셰 등 전통적인 포르투갈 공예 기술로 작업하는 작가의 스타일이 담긴 타일들은 가까이 들여다볼 때 진가를 발휘한다. 작품 전체를 통틀어 동일한 타일은 단 하나도 없는데, 점성술의 상징들을 각기 다른 패턴으로 새겨 넣은 디테일이 압권이다. 게이트웨이는 그 이름처럼 매 순간 또 다른 차원이 열리는 입구다. 수영장이 자리한 정원으로 들어서는 순간 마주하게 되는 조경, 사람이 물에 몸을 담그는 순간 조각에서 수영장으로 공간의 쓰임이 달리지는 경험까지, 시시각각 관람자를 새로운 차원으로 안내한다. 보는 대상이 아니라 사람이 머무는 방식을 설계한 공간. 이 대목에서 게이트웨이는 조각을 넘어 건축으로 읽힌다.

호텔 몰리터 Hotel Molitor PARIS, FRANCE

©Francis Amiand HD

파리 16구, 롤랑가로스와 파르크 데 프랭스 사이. 최초의 비키니가 공개된 장소라는 특별한 이야기를 간직한, 이 도시에서 가장 패셔너블한 수영장이 1929년부터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아르데코 양식으로 설계된 이곳은 실내외 두 개의 수영장을 하나의 축으로 연결한 당시로써는 드문 구조의 스포츠 콤플렉스였다. 외부 풀을 따라 3층 높이로 둘러진 발코니형 탈의실, 선명한 파란 문, 정확한 간격으로 리드미컬하게 반복되는 창과 난간. 마치 도심 한가운데 정박한 크루즈선처럼 설계된 구조가 수영장이기에 앞서 건축적 인상을 남긴다. 이런 근사한 디자인 덕분에 개장 당시 아름다운 수영장과 화려한 유리창, 테라스가 어우러져 당대 파리 사교계의 가장 뜨거운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스포츠 시설을 넘어 파리의 문화와 스타일을 소비하는 장소가 되었다가 1989년 문을 닫았다. 주인을 잃은 공간은 자연스레 그라피티 아티스트들의 무대가 됐고, 스트리트 아트의 성지로서 예술 공간의 DNA를 이어나갔다. 2014년 대대적인 복원을 거쳐 고급 호텔과 스파, 레스토랑을 갖춘 복합 시설로 재개장한 것이 오늘 날의 호텔 몰리토르다. 여전히 이곳에 머무는 사람들은 아르데코 풍경 안에서 그림의 요소처럼 저마다의 생명력을 부여받는다.

테르메 바스 스파 Thermae Bath Spa BATH, ENGLAND, UK

©Thermae Bath Spa

런던에서 기차로 1시간 반가량 떨어진 영국 남서부의 온천 도시 바스에 자리한 테르메 바스 스파. 목욕으로 유명한 도시답게 지명부터 ‘Bath’인 바스는 서기 1세기 로마인들이 영국을 점령하던 당시 스파 도시로 건설되어 로마식 공공 목욕 문화의 중심지였던 곳이다. 바스 한복판에 들어선 테르메는 오래된 목욕 문화를 현대 감각으로 다시 빚어낸다. 도심 한가운데서 2,000년을 이어온 온천 위에 세워진 이곳은 시간을 겹쳐 쌓은 건축이다. 18세기 조지 왕조 시대 석조 건물 위에 건축가 니콜라스 그림쇼의 현대 유리 구조를 덧입혀, 서로 다른 시대가 한 공간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테르메 바스 스파는 실내와 실외, 두 개의 서로 다른 물의 장면으로 나뉜다. 건물 중심에 자리한 미네르바 바스는 유리로 둘러싸인 실내 풀이다. 유리 구조 안에서 빛과 수증기가 겹겹이 쌓이며, 마사지 제트를 갖춘 웰니스 공간이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하늘과 도시를 향해 열린 루프톱 풀을 만난다. 따뜻한 온천수 위로 증기가 피어오르고, 그 너머로 바스의 오래된 건물과 첨탑의 스카이라인이 펼쳐진다. 물에 몸을 담근 채 도시를 내려다보는 순간, 물의 감각은 도시의 풍경으로 확장되는 구조다. 2,000년 전에도 지금도 사람들은 여전히 바스의 물속에 몸을 담그고 시간을 흘려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