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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루이스 풀먼 “제 열정이 제가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것 같아요”

2026.05.17.전희란

<탑건: 매버릭>에서 하늘을 누비고 마블 <썬더볼츠> 에서 생명을 구한 그는 다음 작품에서는 보다 현실적인 이야기에 발을 딛고 싶었다. 그 선택이 바로 <앤 리의 유언>인데, 이 작품은 오랫동안 쌓여온 불안을 마주하게 한 기묘한 시대극이자 뮤지컬이다.

베스트와 쇼츠, 모두 돌체앤가바나.

루이스 풀먼은 이 장면을 절대 망치고 싶지 않았다. 이 장면에 얼마나 많은 것이 걸려 있는지, 그리고 이 인디 영화의 750만 파운드 예산 중 얼마나 큰 부분이 거대한 목조 건물을 불태우는 데 쓰였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부다페스트에 마련된 <앤 리의 유언> 촬영장에서 진흙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등 뒤에서 불길이 치솟는 가운데 혹독한 채찍질을 당하는 연기를 하던 순간, 등에 댄 보호 패드가 제자리에서 미끄러지고 말았다.

채찍은 이제 실제로 그의 몸을 때리고 있었고 그 자국은 그대로 멍으로 남았다. 한겨울, 연출을 위해 뿜어낸 안개는 그의 주위에 차갑게 얼어붙은 듯 고여 있었다. 그는 몸을 떨기 시작했고 그 떨림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컷!” 이라고 말할 수가 없었어요. 다시 찍을 수 없는 장면이었으니까요.” 지금은 고향인 LA로 돌아온 풀먼은 이렇게 말한다. “칭찬받을 만 한 일인지는 모르겠어요. 어쩌면 남을 만족시키려는 성향 때문일 수도 있는데 그건 제가 좀 고쳐야 할 부분인 것 같아요.”

물론 팀을 위해 희생하는 것과 지나치게 수동적인 것 사이에는 미묘한 경계가 있다. 하지만 이제 서른세 살인 풀먼은 아직 초기 단계인 커리어 속에서 그 경계를 능숙하게 오가는 법을 익혀왔다. 그는 처음에는 순해 보이거나 존재감이 옅은 인물(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치 인간 벽지 같은”)로 등장했다가 시간이 흐르며 단단한 내면을 드러내는 캐릭터를 통해 자신만의 확실한 영역을 구축해왔다.

실제로 만난 풀먼은 할리우드에서 사랑받는 배우 빌의 아들이지만 결코 주눅 들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평단의 찬사를 받은 마블 영화에 출연하고 모델 카이아 거버와 함께 ‘앤 리 Ann Lee’의 베니스 영화제 시사회에 참석한 배우에게 기대할법한 과시적인 자신감을 드러내는 타입도 아니다. 그는 캘리포니아식으로 재해석한 편안히 즐길 수 있는 음식을 내는 탁 트인 분위기의 카페를 약속 장소로 골랐다. 하지만 일요일 오후 4시는 제대로 된 음식을 주문하기에는 왠지 애매한 시간이어서 그는 예의상 맥주 한 잔을 시킨다. 그는 근처 로스 펠리즈에 살고 있고 고등학교 시절부터 친했던 친구와 함께 집을 빌려 지내고 있다. 누군가는 이를 유치하게 볼 수도 있지만, 지난 몇 년간 집을 자주 비워왔던 그에게는 오히려 현실적인 선택이다.

수트, 셔츠, 슈즈, 모두 디올.

풀먼의 스크린 행보는 2022년 <탑건:매버릭>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는 톰 크루즈와 함께 출연해 처음에는 눈에 띄지 않는 무기 시스템 담당자로 등장하지만 결국 위험한 해군 작전에 투입되는 인물을 연기했다. 이후 잠시 TV 드라마로 무대를 옮겼다가 지난해 <썬더볼츠>를 통해 확실한 도약을 이뤘다. 그가 연기한 밥은 과거 중독을 겪었던 인물로 일반인을 초인 병사로 바꿔준다는 비밀 실험에 참여한다. 그리고 초능력을 지닌 센트리로 변모하며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중요한 존재로 자리할 예정이다. 그렇지만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남긴 어두운 그림자는 여전히 그를 따라다닌다.

대형 예산이 투자되는 슈퍼히어로 영화에 합류하는 일은 그에게도 적지 않은 적응이 필요했다. 플 로렌스 퓨, 와이엇 러셀, 올가 쿠릴렌코 같은 동료 배우들은 모두 MCU에 익숙한 베테랑으로 공포에서 의심, 그리고 용기로 빠르게 감정이 전환되는 장면을 능숙하게 소화해냈다. 또한 “전 세계 관객을 대상으로 만드는 영화에는 이야기를 끌고 가는 일정한 리듬이 있어요. 들리지는 않지만 반드시 따라야 하는 일종의 메트로놈 같은 것이죠. 그래야 관객의 집중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요”라고 풀먼은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그 리듬을 찾아내는 게 제게는 꽤 어려운 일이었어요.”

퓨는 기꺼이 그를 챙기며 이끌어줬다고 그는 말하지만, 그럼에도 몇몇 중요한 순간에서는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서 1.8억 달러 규모의 블록버스터 촬영을 마친 뒤 매니저들이 다음 계획을 묻자 그는 좀 더 “본능적인” 작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더 작고, 가족 같은 분위기 속에서 탐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프로젝트를 원했던 것이다. 그의 팀이 내민 프로젝트는 너무나도 독특해 모든 배급사와 스튜디오에서 거절당했고, 결국 독립 자금으로 제작하게 되었다. 루이스 풀먼은 이 장면을 절대 망치고 싶지 않았다. 이 장면에 얼마나 많은 것이 걸려 있는지, 그리고 이 인디 영화의 750만 파운드 예산 중 얼마나 큰 부분이 거대한 목조 건물을 불태우는 데 쓰였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베스트, 아미. 팬츠, 사롱, 모두 드리스 반 노튼. 후디, 빈티지.

<앤 리의 유언>은 분명 이전과는 결이 다른 작품이다. 65밀리미터 필름으로 촬영한 이 영화는 18세기의 잘 알려지지 않은 기독교 분파인 ‘셰이커 Shakers’를 중심으로 전개되며, 그들의 영적 지도자인 앤 리가 자신의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영국에서 뉴욕까지 대서양을 건너는 격동의 여정을 그린다. 영화에서 앤 리는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연기하며 금욕을 설파하고 신자들에게 황홀경에 가까운 몸짓과 발성을 통해 신에 대한 사랑을 표현할 것을 권한다. 보닛을 쓰고 소매가 풍성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원을 이루어 가슴을 두드리고 두 팔을 하늘로 치켜들며 거의 광기에 가까운 열정으로 찬송을 외치는 장면을 떠올려보면 된다.

감독 모나 패스트볼드는 앤 리의 충실한 오빠 윌리엄 역에 풀먼을 원했다. 하지만 노래를 해야 하는 역할이라 그에게는 영화에서 유일하게 선뜻 맡고 싶지 않은 배역이었다. 그는 가수가 아닌 데다가, 심지어 이미 <맘마 미아! Mamma Mia!> 와 <레 미제라블 Les Misérables>에서 뛰어난 가창력을 보여준 아만다 사이프리드와 함께 연기해야 했다.

“저는 이 작품에는 꼭 참여하고 싶지만 제가 이 이야기를 제대로 이끌어낼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어요. 윌리엄을 연기하는 게 너무 두려웠어요.” 풀먼은 이렇게 말하며, 손님이 몇 없는 카페에서 우리 테이블 아래로 작업용 부츠 한 쪽을 가볍게 흔든다. 패스트볼드는 전문 보컬을 찾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 작품은 뮤지컬이 아니라 “노래를 많이 부르던 인간들에 대한 역사극”이라는 것이다. 그는 한동안 고민한 끝에 현대 무용가인 어머니 타마라 허위츠와 함께 몇 가지 안무를 연습하고 노래하고 춤추는 자신의 모습을 촬영해 감독에게 보냈다. 그 영상은 오히려 그녀를 망설이게 하기보다 그가 이 작품의 적임자라는 확신을 더욱 굳혀주었다. 그래서 그는 결국 과감히 도전하게 되었다. “노래가 그를 두렵게 했다는 걸 알아요. 그렇지만 그는 해냈죠.” 사이프리드는 말한다. “그래서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쉽지 않더라도 가장 가치 있는 것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니까요.”

재킷, 셔츠, 팬츠, 타이, 모두 엠에프펜. 스니커즈, 지미 추. 모자, 하노버. 시계, 예거 르쿨트르.

풀먼은 오래전부터 스스로를 밀어붙이며 두려움을 마주해왔다. <탑건> 속편 오디션 과정에서 그는 고소공포증이 있는지, 비행을 편안하게 느끼는지 같은 질문을 받았다. 그는 비행에는 문제가 없다고 답했고 단순하게도 특수효과로 속도를 높일 수 있는 느린 비행기에서 몇 장면 정도 촬영하게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톰 크루즈의 영화였고, 그는 당연히 항공 장면을 최대한 실제처럼 구현하길 원했다. 그 결과 풀먼을 비롯해 마일스 텔러, 제이 엘리스 등 젊은 배우들은 3개월에 걸친 혹독한 훈련에 참여해야 했다. 물속에 추락한 비행기에서 탈출하는 법부터 고속 비행 시 G포스를 견디는 법, F/A-18 슈퍼 호넷 전투기에 탑승해 직접 카메라를 운용하는 방법까지 배워야 했다. 풀먼은 이 훈련 과정이 너무 버겁게 느껴졌다. 제대로 따라가지 못해 결국 영화에서 하차하게 되는 건 아닐지 걱정할 정도였다.

긴장을 풀기 위해 영화 보험 규정상 금지된 스카이다이빙까지 감행했다.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는 걸 견딜 수 있다면 그 정도는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한번 해보고 나서 ‘그래, 이걸 또 할 필요는 없겠네’ 싶었어요.” 그는 웃으며 말한다. 그에게는 열두 살 무렵부터 이어져 온, 두려움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방식으로 돌아간 셈이었다. 학교에서 한 교사는 풀먼이 휴지나 쓰레기통에 침을 뱉는 모습을 보고 의아해했지만 그 이유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침 속에 나쁜 생각이 담겨 있다고 믿었고, 입안을 정리하지 않은 채 삼키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의 행동을 이상하게 여긴 학교에서는 어머니에게 알렸고, 이후 의사는 그에게 강박장애(OCD)가 있다고 진단했다. 풀먼은 인지행동치료를 받기 시작했고, 치료사는 그에게 두려움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하는 일련의 연습을 시켰다. “지금 상담 후에 집으로 돌아가다가 사고가 나서 죽을 수도 있어요.” 치료사가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내가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고 문자할 때까지는 어떤 행동도 하지 말아요.” 이후 수십 년간 이어진 치료로 풀먼의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속삭이던 목소리는 많이 잦아들었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재킷, 셔츠, 팬츠, 모두 톰 포드.

“이건 완전히 없어지는 게 아니라 결국 다루는 법을 익히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며 말한다. “저를 도와주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 작은 목소리를 놓아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돼요. ‘나 없이는 못 버틴다’고 계속 붙잡거든요.” 그가 자신의 정신 건강에 대해 예상보다 솔직하게 털어놓자 나 역시 강박장애로 힘들었던 경험을 자연스럽게 꺼내게 되었다. 우리는 각자 어떤 식으로 행동을 반복했는지 이야기했는데, 나는 손을 계속 씻었고 그는 특정 숫자를 피했다고 한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이제 괜찮다’는 느낌이 들 때까지 그 행동을 멈추기 어렵다는 점에도 서로 공감했다.

“아마 제가 같은 행동을 벌써 백 번쯤은 했을 거예요. 그런데 못 느끼셨을 거예요.” 그는 시선 한쪽에 있는 기둥의 오른편을 바라봤다가 삼키듯 고개를 넘기고 다시 왼쪽으로 시선을 옮기는 자신의 습관을 설명한다.(그의 말이 맞다. 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이걸로 서로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게 좀 묘하긴 하지만 풀먼은 자신의 속내를 먼저 내보이며 자연스럽게 내 이야기도 끌어낸다.

<탑건> 촬영 당시를 떠올리며 그는 말한다. 동료들 역시 자신만큼이나 잔뜩 긴장해 있었지만 아무도 먼저 털어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제가 먼저 ‘요즘 밤에 잠 못 자는 사람 또 없어요?’라고 말했죠. 그러자 다들 그제야 한숨 돌리면서 ‘맞아, 나도 그래’라고 하더라고요.” 그가 자신의 불안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은 덕분에 공황 발작을 겪어온 사실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해온 사이프리드와도 자연스럽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 “이렇게 계속 넘어야 하는 벽 같은 것들을 서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는 게 참 좋아요. 자신의 어려움에 대해 이렇게 솔직하고 그걸 마주하기 위해 노력하려는 사람이라는 게 분명히 느껴지거든요. 저도 그렇고요. 그래서 더 존중하게 돼요” 라고 사이프리드는 말한다.

재킷, 셔츠, 쇼츠, 모두 몽클레르. 로퍼, 카르미나. 양말, 선글라스, 빈티지 올리버 피플스.

어린 시절의 풀먼은 배우가 되는 데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드럼을 치고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아홉 살 때 아버지가 출연한 2002년 작 <이그비 고즈 다운 Igby Goes Down> 촬영장을 찾은 적이 있지만 유리벽을 깨고 피 웅덩이 속에 쓰러지는 장면을 찍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크게 놀랐다. “그 일을 겪고 나서 엄마가 ‘그래, 이건 아닌 것 같아’라고 하셨죠.” 그는 말한다. 열여덟 살이 되던 해, 풀먼은 노스캐롤라이나에 있는 소규모 리버럴 아트 칼리지인 워런 윌슨 컬리지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그는 지역 노숙자 쉼터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학교 조경팀과 함께 트랙터를 몰며 일을 했다. 그는 몬타나에 있는 가족 목장에서 형, 누나와 함께 자라며 자연스럽게 해오던 일이었기 때문에 이런 노동은 전혀 낯설지 않았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이틀 이상 쉬는 날이 생기면, 풀먼 가족은 LA에서 인구 1천 명 남짓한 화이트홀 인근에 위치한 집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가족들은 함께 관개용 파이프를 옮기고 울타리도 세우고 소 떼를 이동시키는 일까지 도왔다. 하지만 캘리포니아에 있는 집에서도 이 가족의 삶은 다소 남달랐다. 비치우드 캐니언의 언덕에 자리 한 집에는 헛간이 있고 60가지가 넘는 과일 나무와 식물이 자라고 있었다. 아이들은 아프지 않은 이상 TV를 볼 수 없었고 설령 허락되더라도 최대 2시간으로 제한됐다. 대신 풀먼은 나무에 오르고 나무로 검을 만들고 형제자매들과 함께 연극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학교에 가면 다들 ‘헤이 아놀드! Hey Arnold!’나 ‘도슨스 크릭 Dawson’s Creek’, ‘The O.C.’ 같은 얘기를 하고 있는데, 나는 ‘저 얘기에 낄 수가 없네’ 싶은 거죠.” 그는 이렇게 말한다. “‘왜 나는 11학년이 되기 전까지 휴대 전화나 노트북을 가질 수 없는 거지?’라는 생각도 했고요. 그런데 왜 가출 같은 걸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아마 부모님이 우리에게 보여준 다른 옵션들이 충분히 좋게 느껴졌기 때문이겠죠.”

연기를 직업으로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건 대학에 들어가서였다. 그럼에도 그는 가스관을 파내고 팀원들과 함께 조경용 나무껍질을 나르는 일이 너무 좋아 더 전문적인 연기 프로그램이 있는 다른 학교로 옮기지 않았다. 그답게 그는 연기의 불편함에 끌렸다. 검은 상자 같은 공간을 동물처럼 기어 다니는 등 다른 곳에서는 당황스러울 법한 수업에도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 그런 순간에는 불안이 끼어들 틈이 없었고, 연기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풀먼에게는 스스로의 통제를 내려놓는 일이 필요했다.

재킷, 셔츠, 타이, 모두 엠에프펜.

‘앤 리’에서도 비슷한 과정이 이어졌다. 헝가리에 도착하자 패스트볼드는 배우들을 녹음실로 모았고, 풀먼의 표현을 빌리자면 일종의 ‘망설임을 깨는 훈련’을 진행했다. 배우들은 몇 시간씩 구구대고 까악거리며 별의별 이상한 행동을 반복했다. 그리고 그렇게 스스로를 의식하는 마음을 지워가며 거리낌 없이 연기하는 법을 익혀갔다.

“다른 사람들이 점점 더 몰입하는 모습을 보면 어느 순간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게 훨씬 편해져요. 그래서 그걸 경험한 그는 끝까지 밀어붙였고 그 이후로는 전혀 주저하지 않았죠.” 패스트볼드는 이렇게 회상한다. 그는 채찍질 장면에서 풀먼의 몸에 멍이 들었다는 사실도 사이프리드가 말해주기 전까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고 덧붙인다.

“그는 그런 사람이에요.” 앞으로 풀먼이 그리고 있는 커리어는 이런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히는, 말 그대로 전선 같은” 인디 작업과 대형 상업 영화 사이를 오가는 형태다.(그는 최근 커트 러셀과 함께 60초짜리 미켈롭 울트라 광고를 촬영했는데, 이 광고는 슈퍼볼 기간에 방영될 예정이며 출연료는 ‘앤 리’보다 “훨씬, 훨씬 많았다”고 한다.)

그런 균형은 그의 아버지가 오랫동안 유지해온 방식이기도 하다. <인디펜던스 데이 Independence Day> 같은 여름 블록버스터와 데이비드 린치 David Lynch의 <로스트 하이웨이 Lost Highway> 같은 작품을 오가며 커리어를 쌓아왔듯이 말이다. 두 사람은 최근 호주에서 약 3개월을 함께 보내며 1987년 멜 브룩스 Mel Brooks 코미디 <스페이스볼 Spaceballs>의 속편 작업을 통해 처음으로 함께 촬영에 나섰다. “괜히 긴장했던 것 같아요. 사실 그럴 이유는 없었는데 아들은 아버지의 아주 미세한 표정 변화까지도 다 읽어내잖아요. 그런 본능을 끄고 캐릭터에 몰입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어린 풀먼은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가 저를 평가하고 있다 해도 저는 전혀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저를 늘 사랑과 격려로 대해주셔서예요. 제가 ‘네포티즘’의 혜택을 가장 크게 느끼는 부분도 바로 그 점이에요. 이 일을 하는 데 있어 완전한 서포트를 받으며 자랐다는 것이죠.”

셔츠, 팬츠, 모두 프라다. 시계, 예거 르쿨트르.

풀먼은 아버지든 톰 크루즈 같은 업계 선배든 조언을 구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새로운 작품에 들어가기 전이면 아버지와 배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탑건> 촬영 당시 크루즈는 자신만의 방식을 들려줬다. 촬영이 끝나면 먼저 영화를 보고 스스로 평가를 내린 뒤, 대중의 반응을 확인하고 그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얻은 교훈을 다음 작품에 반영한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이후 풀먼도 자신만의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장면을 촬영할 때마다 그 순간의 연기에 대해 어떻게 느꼈는지를 적어두고, 이후 완성된 결과와 비교해보는 식이다. 지금까지 얻은 결론은 하나다. 그는 불확실한 상황에 자신을 던질 때 가장 빛난다.

“인디 영화를 만드는 데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건,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을 믿어야 한다는 점이에요. 완벽해질 때까지 한 장면을 스무 번씩 찍을 수는 없거든요.” 그는 말한다. “그 덕분에 어떤 환상의 순간을 더 오래 붙잡아 둘 수 있어요. 계속 반복하다 보면 그걸 망가뜨리고, 결국 진짜 느낌을 잃어버리게 되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 더 높아질 인지도에 대해 완전히 초연한 건 아니다. “일에 대한 갈증은 분명히 있어요.”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청바지 주머니에서 4년 된 아이폰을 꺼낸다. 지난 1년을 촬영 현장에서 보내느라 지친 그는 아직 다음 작품을 정하지 않았다. 대신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이 버티기 위해 필요하다고 느끼는 ‘천천히 흐르는 삶’의 빈자리를 무엇으로 채울지 고민할 생각이다. “제 열정이 제가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것 같아요.”

*에이미 카우프먼 Amy Kaufman은 LA에서 활동하는 프리랜서 작가다.

Amy Kaufman
포토그래퍼
Daniel Jack Lyons
스타일리스트
Karelyn Pr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