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덕들에게는, 특히 유럽 리그 축구 팬이라면 이 드라마를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겉으로는 축구 드라마처럼 보일 수 있지만, 디어 잉글랜드는 사실 축구 자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더 거창하게 말하자면, 제목에 등장하는 국가대표팀에 대한 이야기조차 아닐 수 있다. 무대와 스크린에서 늘 소재를 둘러싼 사회·정치적 시선을 보여주는 제임스 그레이엄 특유의 작품답게, 디어 잉글랜드는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는 한 국가에 대한 이야기다. 브렉시트와 코로나19를 거치며 목적의식을 잃어버린 나라 말이다. 하지만 지난 혼란스러운 10년 동안 변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다. 가레스 사우스게이트에 의해 되살아난 잉글랜드 축구대표팀, 그리고 점점 더 분열되는 영국 사회에 남은 거의 유일한 통합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작품은 축구팀으로서의 잉글랜드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우스게이트 체제의 네 번의 메이저 대회 스쿼드에 선발된 수많은 선수들, 그리고 1966년 이후 잉글랜드 남자 축구의 가장 성공적인 시기를 만들어낸 이들의 이야기다. 조지프 파인스가 연기한 사우스게이트가 중심축이지만, 그를 둘러싼 선수들 역시 각자의 역할을 맡는다. 작품은 델레 알리의 부침, 유로 2021 이후 래시퍼드·산초·사카가 겪은 인종차별적 공격, 라힘 스털링을 향한 기이한 타블로이드 집착 등을 다룬다. 해리 케인과 조던 헨더슨은 꾸준히 등장하고, 빅 샘도 카메오로 모습을 비춘다. 이들을 연기하기 위해 젊은 배우들이 용감하게 나섰다. 여기 그들의 순위를 매겨봤다.
24위. 제이미 바디 (리 채프먼)
기억나는 건 라커룸 장면 뒤편에 한 번 서 있었던 정도다. 손에 레드불 캔조차 들고 있지 않았다.
23위. 웨인 루니 (바비 스코필드)
TV 안테나가 발명된 이후 가장 후한 캐스팅 중 하나다. 억양은 꽤 비슷하다. 하지만 화면에 등장하는 순간 엄청난 혼란이 온다. 파인스가 그 이름을 말해주기 전까지는 저 사람이 웨인 루니라는 사실을 믿기 어렵다. 마치 유압 프레스에 세로로 끼워 넣은 와자 같달까. 게다가 머리카락도 있고, 웨인 루니처럼 생기지도 않았다.
22위. 애런 램스데일 (알렉산더 그랜섬)
작품에서 본 기억이 전혀 없는데 구글에서 찾은 출연진 목록에는 분명히 있었다. 국가대표에서는 늘 조연급 역할이었고, 카타르 월드컵 무렵 일부 아스널 팬들의 불만을 샀지만 지금 돌아보면 다소 우스운 일이다. 그래서 여기서도 존재감이 약한 건 놀랍지 않다. 아버지는 썩 만족스럽지 않았을 것 같다.
21위. 키어런 트리피어 (마이클 왓슨)
출연 분량이 많지는 않다. 그래도 크로아티아전 프리킥이 들어가는 순간 맥주 냄새가 나는 듯했다.
20위. 루크 쇼 (벤 채프먼)
쇼 역시 한두 장면 정도만 나온다. 이탈리아전 골은 고마웠다.
19위. 카일 워커 (드루 토머스-비스미어)
배경 장면 외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알아보지 못했는데, 화난 휴지 조각처럼 독특하게 생긴 사람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다.
18위. 콜 파머 (돔 레이너)
감자튀김 소년과 성난 빨간머리의 만남.
17위. 제시 린가드 (알렉산더 파슨스)
디어 잉글랜드는 영국 애국주의, 엘리트 스포츠 선수들이 겪는 압박, 승부차기를 세상에서 없애야 하는 이유, 그리고 브렉시트 이후 분열된 영국을 대표팀이 어떻게 하나로 묶으려 했는지를 탐구하는 작품이다. 동시에 2018년 몇 달 동안 린가드가 정말 훌륭한 선수였다는 사실도 상기시킨다. 다만 작품 속 비중은 크지 않다. 참고로 잊힌 컬트 영웅 이야기인데, 애슐리 영은 어디 있었고 필 존스 경은 왜 없었나?
16위. 데클런 라이스 (샘 메이크피스-비치)
또 하나의 ‘거의 안 나오는’ 부류지만 화면에 등장했을 때 바로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순위표 중위권 정도로는 충분하다. 자막 도움도 없이 말이다.
15위. 올리 왓킨스 (대니얼 퀸시 안노)
유로 2024 네덜란드전 결승골을 기념하는 멋진 순간을 연기했다. 약간 능청스러운 상류층 청년처럼 묘사되는 대사도 몇 개 있다. 실제 모습과 얼마나 비슷한지는 모르겠지만 남부 출신인 건 맞다. 보트 위의 득점왕이라기보다 준결승전 득점왕에 가깝다.
14위. 필 포든 (알피 미들미스)
분명 필 포든으로 보인다. 다만 슈퍼마리오 버섯을 먹고 키와 몸집이 양쪽으로 15cm쯤 커진 버전이다. 그리고 30대 초반처럼 보인다. 중고 푸조를 팔 것 같은 느낌도 있다.
13위. 제이든 산초 (리스 페넬)
2화의 감정적 클라이맥스를 책임진다. 당연히 이탈리아와의 유로 결승전에서 래시퍼드·산초·사카가 실축한 승부차기가 중심이다. 이어지는 에피소드에서는 그들이 겪은 인종차별 공격이 다뤄진다. 페넬은 이를 훌륭하게 소화했다. 셋 중 존재감은 가장 적지만, 이는 현실에서 산초의 위상이 떨어진 상황을 반영하는 듯하다. 외모도 꽤 닮았다.
12위. 라힘 스털링 (프랜시스 러브홀)
둘 다 키가 작다는 점을 제외하면 스털링과 전혀 닮지 않았다. 하지만 스털링은 작품 전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타블로이드 언론의 감시와 교묘한 인종차별을 상징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러브홀은 그런 인간적인 장면들을 훌륭하게 표현했다.
11위. 조던 헨더슨 (데이비드 실즈)
잉글랜드와 리버풀의 과소평가된 중원 일꾼인 헨더슨은 디어 잉글랜드 속 대부분의 대회 스쿼드에 포함되는 몇 안 되는 선수다. 그래서 작품 내 역할도 상대적으로 크다. 라커룸에서 후배들이 의지하는 베테랑이다. 1화에서는 재미있는 라커룸 다툼 장면도 있다. 그 외에는 조금 지루해 보인다. 사실 실즈는 그렇게 연기해야 했다. 진짜 선덜랜드 사람처럼 들리고, 눈빛 없는 헨도 특유의 표정을 완벽하게 재현했다.
10위. 주드 벨링엄 (제이컵 그린웨이)

슬로바키아전의 구세주. 사우스게이트의 이례적으로 열정적인 하프타임 연설에 영감을 받아 환상적인 오버헤드킥을 성공시킨다. 감독은 탈락하면 자신이 욕을 먹을 테니 자유롭게 두려움 없이 뛰라고 선수들을 독려한다. 그린웨이는 약간 ‘우리 집 주드 벨링엄’ 느낌이지만 상관없다. 목소리를 완벽히 재현했고, 세계 최고 선수다운 아우라가 넘친다.
9위. 델레 알리 (루이스 셰퍼드)
초기 사우스게이트 시대 라커룸에서 가장 목소리가 큰 인물 중 하나로 묘사된다. 셰퍼드는 눈을 가늘게 뜨고 보면 알리를 꽤 닮았다. 그는 영국 축구 역사상 가장 안타까운 ‘만약에’의 사례 중 하나로 남을 것이다. 작품이 그의 개인적 고통을 남성 정신건강 문제를 탐구하는 장치로 활용한 점도 반갑다.
8위. 마커스 래시퍼드 (에뎀이타 듀크)

마커스 본인보다는 형처럼 보이지만, 목소리를 완벽하게 재현했고 승부차기 실축 이후의 감정도 훌륭하게 표현했다.
7위. 1996년의 사우스게이트 (카스퍼 힐턴-힐)
조끼 정장을 입기 전의 어린 가레스다. 1996년 독일전 승부차기 실축 이후의 트라우마가 작품 내내 사우스게이트를 괴롭힌다. 이는 중요한 극적 장치이자 그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그림자 속에 있긴 하지만 외모와 목소리 모두 젊은 시절 가레스와 거의 똑같다. 게다가 존 메이저 전 총리와 기묘한 만남도 갖는데, 놀랍게도 실제 있었던 일이다. 존 메이저를 연기한 스티븐 매킨토시 역시 실제 인물과 엄청나게 닮았다.
6위. 부카요 사카 (압둘 세세이)
최근 몇 년 사이 아스널의 스타 보이는 의외로 강한 성격의 인물로 성장했다. 한때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순수한 매력은 다소 사라졌다. 2026 월드컵쯤에는 중립 팬들의 사랑도 덜 받을지 모른다. 그래서 디어 잉글랜드는 그가 유로 2021을 휩쓸며 등장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좋은 작품이다. 세세이는 외모뿐 아니라 행복에 들뜬 강아지 같은 에너지까지 완벽하게 표현한다. 그리고 실축 이후의 엄청난 슬픔도. 나도 또 울었다. 덧붙이자면 이 작품은 황홀한 향수와 비극적인 트라우마를 정말 순식간에 오간다. 하지만 그게 바로 잉글랜드 축구다.
5위. 조던 픽퍼드 (조시 배로)

만약 듀라셀 토끼에게 ‘28일 후’의 분노 바이러스를 주사하고, 토니 몬태나급 코카인 더미에 얼굴을 처박는다면 조던 픽퍼드의 광기 어린 에너지에 절반쯤 가까워질 것이다. “네 가족 전부를 죽여버리겠다”는 분위기를 배로는 완벽하게 구현했다. 목의 혈관이 가장 많이 튀어나온 배우에게 주는 오스카상이 있다면 확실한 수상자다.
4위. 빅 샘 앨러다이스 (앤드루 던)
100% 승률을 기록한 유일한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이다. 물론 한 경기뿐이지만 어쨌든 100%다. 시리즈 최고의 장면 중 하나 덕분에 5위 안에 들었다. 그는 셰익스피어 연극을 하는 것처럼 두 팔을 치켜들고 외친다. “잉글랜드 감독!” 그리고 이어서 “와인 한 파인트!” 장면 내내 불도그 목주름 같은 턱살이 흔들린다. 실질적 의미보다는 마블 영화식 코믹 카메오에 가깝지만, 와인 한 파인트는 언제나 줄거리보다 강하다. 게다가 던은 빅 샘과 판박이다. 둘이 함께 우버이츠 광고라도 찍어야 한다. 와인 한 파인트 마시기 대결 같은 걸로.
3위. 해리 맥과이어 (애덤 휴길)
사우스게이트 시대 잉글랜드 대표팀의 새로운 단합을 상징하는 가장 사랑받는 인물 중 하나다. 이스터섬 석상 같은 존재인 그는 감독의 초기 발탁 선수이자, 훗날 가장 제외하기 어려운 선수 중 한 명이 된다. 휴길은 매과이어를 약간 둔하지만 매우 사랑스러운 인물로 연기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슬랩헤드 그 자체다. 머리 위로 몇 센티미터쯤 더 컸다면 좋았겠지만 정상적인 두개골을 가졌다고 감점할 수는 없다.
2위. 해리 케인 (윌 안텐브링)

잉글랜드에 아무리 많은 트로피를 안겨주고, 훗날 국가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다 해도 사람들은 케인의 발음을 놀릴 것이다. 특히 “obviously”라는 단어를 자주 쓰는 습관은 더 놀리고 싶다. 틱톡에서 수없이 패러디됐고, 이런 연기는 자칫 희화화되기 쉽다. 하지만 안텐브링은 신기하게도 술집에서 흉내 내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으면서 케인을 완벽하게 재현한다. 정말 인상적이다. 더군다나 실제로는 아스널 팬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1위.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조지프 파인스)
파인스는 실제 사우스게이트를 처음 만났을 때 거울을 보는 기분이었다고 농담한 적이 있다. 사실 그 말조차 과소평가다. 그는 뛰어난 배우일 뿐 아니라 불안하고, 결단력 있고, 괴로워하고, 집착적이고, 친절하며, 늘 찡그린 얼굴에 조끼 정장을 입은 사우스게이트를 자신의 커리어 최고 수준으로 연기해냈다. 파인스는 마이클 신이 토니 블레어이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토니 스타크인 것처럼 곧 사우스게이트 그 자체다. 그는 무대판에서 TV판으로 복귀했다. 만약 디어 잉글랜드가 토마스 투헬 스핀오프를 만든다면 반드시 카메오로 등장해야 한다. 어쩌면 유로 2028 전날 밤 투헬 침대 끝에 나타나는 포스의 유령이 되어, 트렌트 알렉산더아널드를 다시 미드필더로 써보라고 조언할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통할 테니까. 그렇지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