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연락처는 수백 개, 메신저 친구도 수천 명. 그런데 금요일 저녁 갑자기 심심해지면 막상 “지금 만나자”라고 연락할 사람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 아니다.

연락처와 친구는 다른 개념이다
연락처에 저장된 사람들은 대부분 학교 동창, 직장 동료, 거래처 관계자, 모임에서 만난 지인들이다. 심리학 전문 매체 심플리 사이콜로지는 이러한 관계를 ‘약한 연결(Weak Tie)’이라고 설명했다. 약한 연결은 새로운 정보나 기회를 얻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외롭거나 심심할 때 자연스럽게 만나 시간을 보낼 정도의 친밀감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연락처 숫자가 많다고 해서 실제로 가까운 사람이 많은것은 아니다. 이름은 저장돼 있지만, 막상 전화를 걸기에는 어색한 관계가 대부분인 경우도 적지 않다.
관계는 유지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학생 시절에는 매일 같은 공간에서 만나며 관계가 유지된다. 하지만 성인이 되면 직장, 연애, 결혼, 육아 등 각자의 삶이 우선순위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만나는 횟수가 줄어든다. 학술지 세이지 저널에 실린 연구에서도 물리적 거리와 만남의 빈도는 사회적 지지와 친밀감에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나타났다. 아무리 친했던 친구라도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으면 서로의 일상을 모르고, 관계의 온도 역시 점차 낮아질 수밖에 없다.
SNS가 관계의 착각을 만든다
SNS는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동시에 관계를 착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친구의 여행 사진을 보고, 스토리에 반응하고,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다 보면 계속 친하게 지내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실제 만남과 온라인 소통은 다르다. 상대방의 근황을 안다고 해서 친밀한 관계가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SNS 덕분에 “잘 지내는 것 같으니 굳이 연락하지 않아도 되겠지?”라고 생각하며 관계를 적극적으로 관리하지 않게 되는 경우도 있다.

‘만나자’가 어색한 관계만 남았기 때문이다
연락처 속 사람들은 많지만, 대부분은 갑자기 연락하기 어려운 관계일 수 있다. 오랜만에 연락해도 편안한 친구가 있는 반면, 몇 년째 연락이 끊겨 안부를 묻는 것조차 부담스러운 사람도 있다. 가디언지는 가까운 친구와 완전히 낯선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프린지 프렌드(Fringe Friend)’ 관계를 소개하며, 많은 현대인들이 이런 중간 단계의 관계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친분은 있지만 선뜻 만나자고 말하기에는 애매한 관계가 많아질수록 외로움을 느끼기 쉬워진다.
결국 필요한 건 숫자가 아니라 밀도다
인간관계 연구들은 공통적으로 관계의 양보다 질이 행복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이야기한다. 즉, 연락처가 수백 개여도 외로울 수 있다는 이야기다. 반대로 언제든 “밥 먹자”라고 연락할 수 있는 친구 몇 명만 있어도 삶의 만족도는 크게 달라진다. 결국 중요한 것은 연락처의 숫자가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편하게 연락할 수 있는 관계를 얼마나 유지하고 있는가다.

